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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지만 강한 임실군 20개의 촛불 “우리도 이 나라 주인이니까요”
    우리 이야기 2017. 2. 13. 01:35

    “아따 여그가 뭐 취재할 것이 있다고 왔대요?”

    전북 임실군의 촛불집회 참가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돌아온 대답이다. 그는 임실 주민들이 “시위를 벌인다기보다 민주시민으로서 그저 실천만 하고 있을 뿐”이라며 인터뷰가 낯부끄럽다고 했다.

    전국 주요도시에서 박 대통령 퇴진 등을 촉구하는 촛불 80만여 개가 타올랐다는 11일, ‘주요도시’에 해당하지 않는 지역에서도 시국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그중 전북 임실군에서 열린 ‘제 12차 임실 촛불집회’의 현장을 찾아갔다. 이곳에 모인 20명의 시민들은 “이 나라의 주인으로 나섰다”면서 “더 이상 박근혜를 용서해선 안 된다”고 소리쳤다.

    임실 집회 가보니... “촛불 안 들었다고 화 안 난 거 아니다”

    오후 5시 55분 임실 공용버스터미널(임실읍 이도리). 주최 측인 ‘박근혜 퇴진ㆍ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임실운동본부’의 예고대로라면 바로 5분 뒤부터 집회 시작인데 주변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했다. 주차장 외곽에 초가 담긴 상자 한 박스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6시 정각이 되어서야 한 사람이 나타났다. 박기대(50)씨였다. 박씨는 농민인 동시에 이 집회의 주최 측 관계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면서도 멋쩍다는 듯 “전부 아는 사람끼리 하는 집회에서 주최 측 관계자라고 말하기 민망하다”고도 덧붙였다. 박씨는 이어 어디론가 연락을 하더니 “곧 다른 사람들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5분도 채 안 지나서 4명이 모였다. 이들 중에는 강차중(69)씨도 있었다. 그 역시 농민인데 주최 측인 임실운동본부의 대표이기도 했다. 강씨는 “민중의 소리를 들으러 왔느냐”며 우스갯소리를 건넨 후 “집회 초창기에 왔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집회를 처음에 열었을 때만 하더라도 몇 백 명씩 모였지. 깨어있는 주민들이 모여 갖고는 저마다의 목소리를 냈었어. 그런데 날도 추워지고, 각자 집안사정들도 있고 하다 보니 매주 모이긴 힘들었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라에 불만들이 없어진 건 아니야. 각자 할 일들 하면서 박근혜와 황교안 등등이 하는 짓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어. 그러니 인원이 줄어들어도 실은 괜찮아”

    “야, 저 차 옆으로 조금만 밀어봐라”

    오후 6시 15분, 집회준비가 본격화 됐다. 현수막과 피켓 등 미리 갖추어진 것은 없었지만 행사를 위한 공간마련이 우선이었다. 버스터미널 주차장에서 집회가 진행되는 터에 차 몇 대를 옮겨야 했다. 이날은 강씨가 지목한 한 트럭이 밀려나는 처지가 됐다.

    사실 원래부터 각종 장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집회에서 줄곧 사회를 맡아 온 김정흠(51)씨는 “지역 주민들이 십시일반 후원해준 덕분에 초반에는 현수막과 피켓 등 웬만한 건 다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지금이야 인원이 적어서 간소할 뿐, 여전히 후원은 이어지고 있다”고도 밝혔다.

    “농촌이다 보니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아요. 교통도 안 좋은데 날씨까지 추워져서 요새 많이들 못 나오셔요. 하지만 우리가 힘들다고 하면 후원금을 십시일반 모아주세요. 아마 돈이 없어서 집회를 멈춘다던지 하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거에요.”

    2분도 걸리지 않아 마무리 된 준비작업. 곧바로 집회가 시작됐다. 어느새 15명의 참가자가 모인 무렵이었다. 집안일을 하느라, 교통이 불편해서, 선약이 있어서 등등 늦은 이유는 다양했다. 미리 와있던 집회 참가자들은 이들을 “야, 어서 와라”하며 반겼다.

    새마을지도자회와 부녀회에서 회장을 맡고 있다는 임덕자(49)씨는 “지난번에는 못 와서 죄송했다”면서 이날 대표로 앞에 나가 초에 불을 붙였다. 임실 집회는 그날의 대표 1인이 앞에 나가 먼저 초를 밝히면, 그 초를 옆 사람들에게 전달해주는 것으로 행사를 시작한다.

    이날 집회는 참가자 전원이 돌아가며 자유발언을 한 후 최회현(55)씨의 기타반주에 맞춰 함께 노래를 부르는 순서로 진행됐다.

    가장 먼저 발언에 나선 강차중 대표는 “주권자로서 어떤 행동이 옳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자”고 했다. 이어 “올바른 생각이라도 누워서 하는 것과 실천에 나서는 것은 다르다”며 이날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을 추켜세웠다.

    2012년 교보문고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던 소설 ‘섬진강 만월’의 저자 김진명(55)씨도 이 자리에 있었다. 김씨는 “임실은 소충(昭忠)의 정신이 깃든 지역”이라며 “과거의 소충은 국가의 부름에 달려가는 것이라면 오늘의 소충은 민중의 부름에 달려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현재도 앞으로도 민중들과 함께 나설 것”이라고 외쳤다.

    연설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인원이 차츰 늘어갔다. 참가자 일부가 틈틈이 “아직 하고 있으니까 빨리 와”하며 전화통화를 한 것이 보탬이 됐다. 그렇게 이날 최종적으로 모인 인원은 20명. 평소에는 30~50여 명 정도가 모이는데 정월대보름이었던 이날은 ‘달집태우기’ 등으로 인해 조금 바쁜 시기라고 했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집회 참가자들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총 3곡을 불렀다. 비록 인원은 적었지만 대도시 집회에서나 볼 수 있는 떼창의 열기가 이곳에서도 느껴졌다. 김정흠(51)씨는 “평소 친한 사람들끼리 부르다 보니 결집력이 강해 목소리는 다들 크게 낸다”고 했다.

    “탄핵 기각 되면.... 농사에 차질 빚겠지만 더 굳센 집회 이어갈 것”

    오후 7시 20분경 본 집회가 끝났다. 하지만 아주 끝난 것은 아니었다. 집회 참가자 전원이 인근 카페 <담배가게 아저씨>로 향했다. 거의 모든 집회 때마다 이어지는 코스라고 참가자들은 설명했다.

    임실에서도 초기에는 본 집회 이후 약 800미터 가두행진을 벌였었다. 하지만 인원이 줄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시국 대화를 나누는 게 보다 유익하다는 판단에 이 카페로 모인다고 한다.

    강차중 대표는 이번 국정농단 사태 관련자들을 향해 “저그들이 암만 권력에 욕심낸들 뭐혀, 그 권력이란 것은 우리로부터 나오는 것인디”라고 일갈했다. 그리고 이것이 집회를 열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우리 몇 십여 명이 여기서 이래봐야 중앙의 제도권에는 큰 영향을 못 주겠지.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야. 임실, 이 작은 지역사회의 주민들도 이 기회에 민주주의를 알아야하기 때문에 촛불을 계속 드는 거야. 우리 임실 주민들도 스스로가 이 세상의 주인임을 알아야 하니까. 그래서 이 집회를 계속 할 수밖에 없는 거지. 대신 평화롭게 말이지.”

    탄핵안 기각 가능성 이야기에 이들은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3월 중순이 넘어서면 본격적인 농사철이기 때문이다. 박기대 씨는 “지금도 이미 고추씨를 뿌리는 곳이 많다”면서 걱정했다. 이어 “사실 기각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도 말했다.

    김정흠씨도 “3월로 넘어가게 된 것 자체도 이미 큰 난관”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내 “기각이 된다면 더 강하게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자리에 함께한 다른 참가자들도 “힘들긴 하겠지만 오히려 더 강해지면 강해졌지 집회가 멈추진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카페에서의 담화를 포함한 모든 행사는 오후 10시께 끝이 났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20여 명 임실의 시민들은 오는 18일은 물론 25일에도 어김없이 집회를 이어가겠다고 했다. 특히 25일에는 “총력전을 펼치겠다”면서 서로에게 “많이들 데리고 오자”고 웃으며 격려하기도 했다. 

    집회가 마무리되고 한참 지난 시각인 오후 10시. 작지만 큰 울림이 퍼졌던 임실 공용버스터미널에는 어느새 적막함만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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