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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입영 장정 여러분께서는 연병장으로 모여주시길 바랍니다."

훈련소에 입소했던 그날, 이 한 마디에 얼마나 겁이 났는지 모른다. '이제 자유는 끝이구나, 부모님과 친구들 전부 못 보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다른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만약 군대가 사회보다 자유와 희망이 넘치는 곳이라면 어땠을지. 그렇다면 부모님과 친구, 이웃들과 떨어지더라도 "연병장으로 나오라"는 소리에 마냥 행복해했을까. 

위 상상 속의 상황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이 있다. 국내 거주 중인 북한이탈주민들이다. 이들은 자유와 희망을 꿈꾸며 가족, 친구, 이웃과의 결별도 감내해서 대한민국에 왔다. 그것도 목숨을 담보로 해서. '자유와 희망'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꿈꾸었던 것이다. 그렇게 대한민국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이 지금은 3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11월 통일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국내에 거주 중인 북한이탈주민은 총 3만 5명이다.  

3만 5명. 이들의 꿈속에서 자유와 희망이 넘실대던 곳, 대한민국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그저 북한보다 나은 것만으로도 행복할까. 궁금했다. 그래서 직접 찾아가서 물어보았다. 이 나라의 주권자로서, 이 나라가 만족스러운지. 또 불만이 있다면 무엇인지. 고로 다음 대통령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대화에는 3명이 나서주었다. 이들 중 2명은 전북에 거주 중인 북한이탈주민으로 20대 여성이다. 그리고 1명은 아동 탈북이탈주민 공부방을 운영하는 박진영(가명)씨다. 이들은 '지역갈등 해소, 정부의 남북 간 소통 노력, 아동 새터민 교육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영남 북한이탈주민, 호남 북한이탈주민에게 '빨갱이'라고..."

강선화(25, 가명)씨와 채민지(25, 가명)씨는 인터뷰를 시작하며 기자에게 대뜸 "죄송하다"고 말했다. 실명과 직업 등 구체적 정보는 기사에 쓰지 말아 줄 것을 부탁하면서다.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만난 친구 사이인데, 둘 다 부모님이 북한에 있어 신분공개가 조심스럽다고 했다. 선화씨는 2014년도에, 민화씨는 2015년도에 입국했다. 

이들 모두 자유를 찾아 대한민국에 왔다. 탈북 과정은 당연히 험난했다. 목숨까지 내놓겠단 각오가 필요했다. 미리 탈출 동선을 짜두고 세밀하게 전략을 짰다. 만에 하나 경계근무 중인 군인에게 걸린다면 숨겨둔 약을 먹고 자살할 셈이었다. 다행히 무사히 탈북에 성공했다. 천만다행이었다. 

선화씨는 4년, 민지씨는 1년을 제3국에서 보낸 뒤에야 지금 이 땅을 밟았다. 자유가 넘실대는 곳, 거기에다 의식주 걱정까지 덜어낼 수 있는 곳. 이곳에서 희망을 보았다. 새로운 꿈을 꿨다. 처음 본 국정원과 하나원의 직원들은 모두 친절했다. 기분이 좋았다. 사회에서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 모두 의사 표현이 거침없었다. 식사자리에서 대통령과 정치인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래도 문제될 건 없었다. 꿈에 그리던 자유였다.   

민지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자유란 것에도 양면성이 있음을 깨달았다. 민지씨는 언젠가 '빨갱이' 소리를 듣게 됐다. 북한이 싫어서 탈출했는데 빨갱이라니. 황당했다. 북한을 찬양한 적도, 옹호한 적도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빨갱이 소리를 들은 이유가 뭘까. 민지씨는 그 이유를 알고 난 뒤 어안이 벙벙했다. 민지씨의 현 거주지가 전라도라는 게 이유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도 좋지만, 이런 식의 근거도 없는 말로 모욕을 주다니.

"예전에 서울에서 사람들과 뉴스를 보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저마다 정치적 견해가 다 다르더라고요. 여기까진 좋아요. 민주주의 국가니까요. 근데 누군가가 그러더라고요. 남한에서 전라도는 다 빨갱이래요. 아니, 북한이 싫어서 나왔는데 빨갱이라뇨. 이 조그만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진 것도 서러운데, 남쪽에서는 좌우로 또 갈라져 있는 것 같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돼요." 

선화씨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몇 마디를 덧붙였다. 선화씨는 지역갈등 문제의 심각성을 다른 계기를 통해 깨달았다. 북한이탈주민들 사이에서도 지역갈등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영남에 사는 북한이탈주민들도 호남에 사는 북한이탈주민들에게 빨갱이의 덫을 씌우는 모습을 본 것이다. 지역갈등이 북한이탈주민들 간의 갈등까지 야기한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민지씨와 선화씨는 차기 대통령이 지역갈등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걸핏하면 종북몰이... 통일 열망 꺾는 것"  

선화씨와 민지씨가 북한이탈주민으로서 가장 마음이 불편할 때는 주변 사람들의 북한에 대한 인식을 체감할 때다. 사람들이 통일을 바라고 있는지조차 의심하게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고. 

"친구들한테 북한에서 왔다고 공개하면 온갖 질문들을 많이 해요. 그런데 그 질문들을 듣고 있자면 마치 저 멀리에 있는 나라를 궁금해하는 것 같아요.

북한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아요. 통일에 대한 관심도 전혀 없는 듯하고요.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은 대개 안 그러시는데 말이죠. 그분들은 최소한 북한을 우리의 동포로 봐주시거든요. 아무래도 6.25를 겪으셨다면 더 그러시겠죠. 젊은 층에게도 그와 같은 인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통일도 앞당겨지겠죠."


선화씨는 우리 청소년들이 북한과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점을 일찌감치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려면 관련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령 북한과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비슷한 문화는 없는지, 언어상의 차이는 어떻게 다른지, 왜 통일이 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것들이다. 

다만 교육이 이루어져도 정치인들의 안 좋은 행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민지씨는 일부 정치인들의 종북몰이를 지적했다. '근거도 없이' 특정 정치세력을 종북으로 내몰면서, 그들을 사회악(惡)처럼 비추는 것 또한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을 꺾는 것이라고 했다. 

민지씨와 선화씨는 정치인들의 이 같은 모습을 뉴스에서 많이 봤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뉴스를 보면서는 우려가 새로 추가됐다. 필요이상의 대북제재를 보면서다. 특히 개성공단 폐쇄 조치는 통일을 더 뒤로 미뤄버리는 것만 같았다. 북한의 핵실험은 분명 잘못됐지만, 거기에 우리 정부까지 함께 남북 간 소통 단절에 노력하는 듯 보였다. 그녀들은 다음 대통령은 남북 간 소통에 힘써주길 바란다고도 입을 모았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한국 가수들이 북한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어요.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와... 이런 시절이 있었다니. 한국 가수가 북한에서 공연을 하다니. 북한의 젊은 친구들은 그런 데에서 머리가 트거든요. 한국이 잘 사는 나라구나, 좋은 곳이구나 하면서요.

저도 북한에서 초코파이를 먹어본 적이 있어요. 개성공단에서 나온 것인데 세상에나, 너무 맛있는 거예요. 대한민국의 문화를 계속 전파해야 해요. 그러려면 남북 간의 소통과 교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잖아요. 그런데 요즘에 보면 정말 걱정됩니다. 점점 통일과는 멀어져 가고 있는 것 같아요.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됐든 많이 달랐으면 좋겠어요."

탈북자는 먼저 온 '통일국민'... "청소년들에 대한 실질적인 교육지원 필요" 

선화씨는 아무리 바빠도 꼭 챙기는 일정이 있다. 아동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교육봉사다. 이 아이들이 사회에 훌륭히 적응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것이 선화씨의 꿈이다. 하지만 이 봉사를 마냥 즐겁게만 할 수 없는 현실이다. 정부의 예산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선화씨 맞은편에 앉아있던 박진영씨가 설명을 보태주었다. 박씨는 아동 북한이탈주민 공부방을 운영 중이다. 박씨에 따르면 아동 북한이탈주민을 돕기 위한 배움터는 전국 13곳에 있는데, 이곳 전부 정부로부터 일정 금액을 지원받는다. 그런데 금액이 적다. 각 배움터마다 예산액의 차이가 있다지만, 대부분 민간단체의 지원 없이는 실질적인 운영이 힘든 상황이다.

선화씨가 있는 배움터도 마찬가지다. 리모델링과 임대료 등 각종 비용만 억 단위의 돈이 들어갔다.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금액은 거기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자체 대외비이므로 정확한 액수는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10여 명에 불과해 예산지원을 적게 받았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박씨는 아동 북한이탈주민의 배움터 운영 현실을 관련 공직자들이 보다 자세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호소했다. 

정부의 예산지원액이 배움터 운영에 실제 필요한 예산액보다 적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 배움터의 특수성을 정부와 국회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박씨는 "고작 10명 있는 데서 무슨 그만한 돈이 필요하냐"는 정치권의 입장을 접한 적이 있다면서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박씨와 선화씨는 배움터를 일반 공부방과 같은 잣대로 바라봐선 안 된다고 호소했다.

우선 아동 북한이탈주민의 경우 또래에 비해 학습수준 차이가 크다는 점을 들었다. 탈북 후 오랜 시간을 중국 등 제3국에서 보낸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 중 일부는 우리말에 익숙지가 않다. 또래 친구들과 비슷한 학습수준은 차치하고 한글부터 가르쳐야 하는 현실이다. 따라서 이 배움터는 더 많은 강사, 더 다양한 교재, 더 다채로운 학습프로그램을 필요로 한다.

뿐만 아니라 이 배움터는 단순 공부방 이상의 기능을 한다. 아이들에게 이 배움터는 주거공간에 준한다. 진영씨와 선화씨가 이곳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날은 1년 중 무려 약 350일가량이다. 많은 아이들이 교우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어 주로 이곳에서 생활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부모들 역시 북한이탈주민이기에 대부분 더 힘든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이유다. 

선화씨와 진영씨가 있는 배움터에는 실제로 아이들이 잘 수 있는 전기장판과 이불이 마련돼 있다. 피아노와 미술도구, 다양한 책들도 가득하다. 부엌시설도 완비돼 있다. 사실상 10명의 자녀를 키우는 가정집과 다름이 없다. 물론 민간단체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진영씨와 선화씨는 정부의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재능이 많아요. 그리고 이 아이들은 먼저 온 통일시민이에요. 또 대한민국 국민이죠. 이 나라의 미래도 이끌어갈 거예요. 정부가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지원도 보다 확대해 줬으면 합니다. 그렇게 이 아이들이 자라난다면 언젠가 통일이 됐을 때 북한에 가서 많은 얘기를 전할 수 있을 거예요. 사회적 인식만큼이나 정부의 인식 또한 개선될 필요가 있답니다."

선화씨와 민지씨에게도 당연히 꿈이 있다. 선화씨는 아동·청소년 북한이탈주민들에게 도움을 주는 게 꿈이다. 민지씨는 사업을 해서 부모님이 계신 북한에 쌀을 한가득 보내는 게 꿈이다. 둘 모두 최선을 다해 노력 중이다. 다만 종종 경제적 어려움에 힘이 부칠 때가 있다.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제공받지만 넉넉한 수준은 아니다.

그럼에도 선화씨와 민지씨는 국가의 도움에 고맙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 온 지 불과 2~3년차, 어떤 분야든 남들보다 두 배는 더 노력해야 간신히 수준을 맞출 수 있다"며 아르바이트 등을 하는데도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북한이탈주민에 제공하는 지원을 지속적으로, 더 나은 방식으로 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한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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