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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개월만에 또 떼죽음... 이런 난리가 또 어딨냐"
    기사 모음 2017. 6. 16. 00:25

    [현장 민심] 
    AI 최대 피해지역 전북 농민들의 한숨...
    "예방 관리만 잘 됐어도"

    지난 14일 오후 전북 전주시 성덕동의 이작마을. 온종일 재잘재잘 떠들던 녀석들이 하루아침에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무더워지는 만큼 나른함도 더해질 무렵, 그나마 녀석들 덕분에 덜 심심했는데. 하필 이웃 동네에서 조류독감이 발생할 게 뭐람. 

    물론 잘만 자라준다면 콱 잡아다가 이웃들과 나눠 먹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막상 녀석들이 한꺼번에 살처분을 당하고 나니 친구를 잃은 듯한 기분이랄까. "까짓것 뭐" 하며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했지만 적막해진 닭장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그리도 허전할 수가 없다. 

    "수십, 수백만 원 되는 닭이지만... 살처분 보상금 2만 원"

    정석씨(60대)가 뒷마당에 키웠던 닭(산란계)은 50여 마리였다. 마을에 경사가 있을 때 몇 마리는 식탁 위에 올라갈 처지였지만, 그래도 죽기 전까진 같은 집 사는 식구라고 전부 애지중지하며 키워왔다. 

    "여태까지 얘네들이 (조류독감에) 걸린 적은 없어요. 나름대로 신경써서 잘 키웠거든요. 그러니 아쉽긴 하죠. 도시에서 강아지 키우는 사람들 마냥 시골에선 닭도 반려동물처럼 키우는 양반들이 좀 있어요. 어떻게 안 아쉬울 수가 있겠어요."

    그럼에도 정씨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하니 관련 조치에 고분고분 따를 생각"이라고 말했다. 마을에서 닭을 키우는 이웃들도 대체로 이와 비슷한 생각이라고도 전했다. 지난 겨울 발생한 AI(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사태 때는 잘 넘겼기에 반복된 피해가 아니라는 점이 그 이유였다. 

    최근 확산 중인 조류독감은 소규모 농가를 중심으로 퍼져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소규모 농가 중에서는 정씨의 집처럼 닭과 오리 등의 가금류를 취미·부업 삼아 기르는 곳이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경우 살처분시 대규모 농가에 비해 재산피해는 덜한 게 사실이라고.  

    하지만 이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 정씨는 "애완용 닭은 종류별로 가격대가 천차만별"이라면서 "한 마리에 수십, 수백만 원에 이르는 닭도 꽤 된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에도 살처분 보상금이 마리당 2만 원에 책정되다 보니 답답한 심정이라고 호소했다.

    "청계닭이라고 알이 새파란 게 있어요. 그게 병아리도 한 마리에 1만 원씩 가요. 백봉오골계나 검정오골계 이런 것들도 마리당 2만 원이에요. 그런 거 사다가 오랫동안 사료 주고 그래가며 키웠는걸요. 저기 이웃집에 XX네는 큰 마음먹고 150만 원짜리도 키웠어요. 그런데 살처분해가면서 그런 것도 보상금으로 2만 원 준다니깐 얼마나 속이 터지겠어요."

    이 마을에서 약 1km 떨어진 용정동의 한 농가에서 만난 박용호(70대)씨도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면서 "앞으로 닭은 도저히 못 키우겠다"라고 푸념했다. 박씨 역시 자신이 멀쩡하게 키우던 닭(산란계) 100여 마리가 이날 전부 살처분 당했다. 

    그는 "(조류독감에) 안 걸리도록 정부나 지자체가 감독을 잘할 생각을 해야지, 매번 발생하고 나서 다 가져간다"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살처분 보상금 얘기는 아직 못 들었지만 큰 기대는 안 한다"라고 전했다. 이어 "언제 정부나 지자체가 제대로 보상해준 적 있느냐"라고 되물었다.

    물론 박씨의 농가도 소규모여서인지 재산상 피해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렇지만 지난겨울에 이어 같은 사태가 또 벌어진 것은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박씨는 자신의 농가는 동네 아이들이 놀러오는 경우가 많아 관리가 철저하다고 했다. 이는 "관리가 잘 되는지만 당국이 제대로 감독해도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 전북 완주군 삼례시장. 토종닭이란 팻말만 있고 정작 토종닭은 그 안에 있지 않다.

    산 닭 거래 금지... 전통시장 상인 "금지가 꼭 능사는 아냐"

    전북 완주시에 있는 삼례시장. 이 시장은 지금의 AI 사태를 확산시킨 데 일조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본래 이곳에서 산 토종닭을 판매하는 김철수(가명)씨는 "죽지 못해 산다"고 하소연했다. 김씨는 이날 오후 5시까지 달걀 한 판을 판 게 전부라고 했다. 지난 12월부터 현재까지 6개월 동안 이런 식의 매출부진이 이어지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김씨가 걱정하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AI 확산 여파에 전통시장에서의 산닭 거래금지 조치가 엄격한 수준으로 제도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이에 대해 그는 "이 업계 종사자들은 대체로 수십 년 일한 사람"이라면서 "퇴출시킬 거면 이들에 대한 대책도 같이 마련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 일, 지금도 불법인 거는 저도 알아요. 그런데 종사자 대부분이 수십 년 이 일만 한 노인들이잖아요. 이들에 대한 대책도 없이 불법이니 나가라는 건 죽든 어찌 되든 알아서 하라는 소리잖아요."

    김씨도 정부와 지자체가 애초부터 AI 예방을 위한 관리감독을 잘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김씨는 "AI 위기경보단계를 평시 수준으로 바꾸자마자 같은 일이 다시 터진 게 말이 되느냐"라면서 "이는 관련 당국의 관리·감독이 허술한 탓"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그럼에도 정부는 항상 농민과 상인들 탓만 한다"라면서 "그들 시각부터 먼저 교정해야 한다"라고도 말했다. 

    한편, 현재 전라북도 내에서는 삼례시장의 산닭을 판매한 노점상이 이번 AI 사태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분위기다. 해당 노점상을 보았느냐는 기자 질문에 김씨는 "자주 왔던 분"이라며 "다만 그의 정체는 확실히 모르겠다"라고 밝혔다. "그 노점상은 어디서 병아리나 닭을 구해왔느냐"는 물음에는 "낸들 알어?"라고 반문했다. 

    ▲ 전주시의 한 치킨집(사진 속 가게는 이 기사의 취재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사장님 두 번 울리는 AI... "재난문자가 재앙문자로 보인다" 

    AI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가슴을 졸이는 이들이 또 있다. 치킨집 사장님들이다. 전북지역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이들은 지난 6일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이날 전북 도민들에게 날아온 한 통의 문자 때문이다. 

    "안전안내문자 / [전라북도] AI관련... 군산 등지에서 닭을 구입하여 키우시는 분을 신고 바람."

    치킨집 사장님들은 이 문자가 "재난문자가 아니라 재앙문자로 읽혔다"라고 입을 모았다.   

    덕진동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한아무개(38)씨는 "지난주부터 슬금슬금 매출이 줄기 시작했다"라면서 "이번 주 들어서는 하루 매출이 1/3 가량 줄었다"라고 말했다. 한씨는 "얼마 안 있으면 알바생들 월급날"이라면서 걱정했다. 그는 "조류독감 한 번 터지면 대강 몇 개월은 긴장의 연속"이라고도 했다. 

    인근의 또 다른 치킨집도 사정은 비슷했다. 50대 치킨집 사장 최아무개씨는 "장사가 이렇게 힘든 건줄 몰랐다"라면서 "치킨집은 더욱 그런 것 같다"라고 전했다. 최씨는 "장사한 지 4개월밖에 안 됐는데,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었다는 말을 실감한다"라고도 말했다.

    "장사 처음 시작했을 때도 AI 때문에 난리였는데 그게 계속 이어지고 있잖아요. 게다가 요즘에는 치킨값이 인상된다는 등 온갖 말들이 많아서 더 힘들어요. 언제더라, 하루는 어떤 손님이 AI 때문에 치킨값 올라가서 좋겠다고 비아냥대더라고요. 사람 두 번 울리는 거죠. AI가 여러 가지로 문제예요." - 50대 치킨집 사장 최아무개씨

    치킨집 입장에서 AI는 가장 흔히 발생하면서도 가장 심각한 위기와 같다. 이 가운데 현재 논란이 일고 있는 치킨값 인상과 그에 따른 불매운동은 가맹점주들에게 더욱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씨와 최씨는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또한 AI에 관해서는 사후대책만큼이나 사전예방이 모두가 살 길이라는 데에도 동감했다. 

    한편, 이번 AI 확산의 발원지이자 최대 피해 지역으로 꼽히는 전라북도는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소강 국면에 접어든 양상이다. 지자체는 당분간 24시간 비상상황을 유지해 방역 대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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