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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을 뜨려는 청년들 "늦고, 부족하고, 편견까지"
    기사 모음 2017. 6. 27. 02:26

    [지방 청년 이야기] 
    전주 청년들이 느끼는 지역 격차... 
    '일자리'도, '놀 곳'도 없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려는 또 다른 변화는 지방분권 실현이다. 기실 '지방분권'은 우리 사회에서 겉돌기만 했던 키워드다. 지역격차 해소 방안으로 흔히 거론되어 왔으나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다. 여전히 일자리와 교육,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방이 서울·수도권에 비해 열악하다는 데에 반문하는 이는 드물다. 

    이로 인해 발생한 가장 커다란 문제 중 하나가 지방 청년들의 지역 이탈이다. 지방의 많은 20대 청년들이 일자리와 문화생활을 찾아 고향을 떠나고 있다. 지방 대부분이 이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만한 여건을 못 갖추고 있어서다. 이렇게 타향살이에 나선 청년들이 수 만여 명에 이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6년 20대 청년들의 인구 순이동 수치가 서울 +2만2563명, 경기도 +2만6486명을 기록한 데 반해 지방은 전부 마이너스를 보였다. 강원도는 -5424명, 충북은 -2137명, 충남은 -242명, 전북은 -6950명, 전남은 -7777명, 경북은 -8600명, 경남은 -7290명에 달했다. 

    지방 청년들은 이에 대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일할 곳도, 그렇다고 놀 곳도 부족한 곳이 지방이라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설령 지방에다 터를 잡아도 '지방 사람'이란 데에서 오는 선입견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이들이 체감하는 지역 격차란 무엇일까.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전북 전주의 학생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청년들은 지방에 살기 힘들다

    ▲  전주에서 젊은층이 주로 모이는 곳중 하나인 전북대학교 옛 정문 앞. 시험기간이라서 그런지 유동인구가 많지 않다.

    "맛집이요? 맛집은 사실 서울에 제일 많죠."

    맛집 많기로 소문난 곳, 전북 전주시에 사는 서하늘(23·경영학)씨는 이 같이 말했다. 서씨는 "전주에만 있는 맛집이 몇이나 되겠냐"고 되물었다. 예로부터 '음식만큼은 전라도'라고 했건만, 청년들 사이에서는 이제 통용되지 않는 말이다. '전주 비빔밥'을 즐겨먹는 전주 청년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서씨는 "지방은 무엇이든 항상 늦는다"고 불평했다. SNS에서 '요즘 HOT한 메뉴!'라고 홍보하는 음식들. 정말 기발하고 맛있어 보이지만 직접 먹으려면 고속버스 표를 끊어야 했다. 그것들 대부분이 서울·수도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간혹 뜨는 "전주에 상륙했다"는 홍보성 글에는 늘 '드디어'라는 수식어가 앞에 붙었다. 유행이 한참 지났다는 의미다.  

    최근 해피벌룬 관련 뉴스를 볼 때는 의아할 따름이었다. 해보고픈 마음은 없었지만 전주에서는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뉴스에선 왜 '유행'이라고 한 걸까. 좋고 안 좋고를 떠나, 이처럼 각종 유행이나 문화들은 대개 서울의 것이다. 서씨는 서울에 취업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더 넓고 역동적인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취업을 노리는 이유가 이뿐일까. 유행과 문화에 관계없이 '반강제'적으로 지방을 벗어나야 하는 현실도 엄연히 존재한다. 많은 일자리가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고영주(26·전자공학)씨는 이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호소한다. 고씨는 "IT관련 업종에 몸담고 싶은데, 그러려면 서울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학생인 고씨는 현재 전주에 거주 중이지만 고향은 남원이다. 부모님과 자신 모두 전북을 떠나 본 적이 없다. 

    고씨가 더욱 불만인 건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지방의 한계가 느껴진단 점이다. 다니는 학교에서 다양한 형태의 지원이 따르지만 부족하다. 인터넷을 통해 전문가 특강과 멘토링 등 기회다 싶은 정보들을 다수 접했지만 이것을 듣기 위해선 전부 서울로 가야만 했다. 돈과 체력을 무릅쓰고 가려고 해도 평일 저녁에 이루어지는 것들이 많아 대부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평일 저녁에 그러면 '서울이나 수도권 학생만 와라'는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서울에는 잘만 찾아보면 그런 식의 기회가 많아요. 전주에서는 학교에서 나름대로 도와주긴 하지만 정보란 게 많을수록 좋은 거잖아요."    

    지방에서 취업을 했어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한 중견기업에 취업한 박종현(27·식품공학)씨는 부산 사람이지만 전주 소재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도 이곳에서 했다. 대학 재학 시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귄 덕분에 지역과도 정이 많이 들어서다. 하지만 친척 등 주위 어른들은 그를 종종 아쉽게 바라본다고 한다. 이들은 박씨가 서울과 같은 대도시로 가길 원했던 모양이다.  

    박씨는 "서울로 진출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괜찮다는데 그런 소리를 들을 때면 기운이 빠지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가 걱정이라고도 했다. 그는 "내가 괜찮다고 말한 이상 계속 괜찮아야만 할 것 같다"며 "만약 이곳에서 내게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전부 내 잘못처럼 될까봐 걱정된다"고 푸념했다.    

    물론 지방에서의 삶이 서울·수도권에 비해 나은 점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상대적으로 싼 물가다. 그런데 청년들은 별로 와닿지 않아 하는 듯하다. 지방이 훨씬 싸다는 집값이라야 어차피 당장 집 살 계획이 없어 무관한 데다, 오히려 지방이기에 돈이 더 드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박진주(23·회계)씨는 이에 대해 "옆 동네 가는 데에도 큰 돈 들이기 일쑤다"라고 말했다. 그는 "문화생활 여건은 물론 지역 내 인프라도 열악하다 보니 돈이며 체력이며 안 힘든 게 없다"고 불편해 했다.   

    "가령 연인과 데이트를 할 때, 전주 시내에서 할 만한 것들은 금세 다 해요. 그래서 시외로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30분밖에 안 걸리는 옆 동네(군산·익산 등)갈 때에도 시외버스 표를 끊어야 하잖아요. 그것만 왕복 1만 원이 더 드는데... 지하철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나마 저는 시외로 통학은 안 해서 다행이지, 타지에서 학교 다니는 애들은 좀 힘들어 하죠."  

    지방 청년들 문제, 일자리로만 해결 못해 "중앙과 지방의 유기적 협동 중요"

    지난해 6월 전주지역 청년단체인 '청년들'이 발간한 보고서가 있다. <2016 전주 청년 보고서>란 이름의 이 문서에는 전주시 청년실태 및 정책수요 조사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전주시에 거주하는 20·30대 청년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약 3개월 간 실시된 그들의 삶의 질 전반에 대한 조사 결과다. 

    전주 지역에 한해 이뤄진 조사이므로 모든 지방 청년들 현실에 적용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지방 청년들이 겪는 문제로 흔히 거론되는 사안들(일자리나 여가 등)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내용들이 담겨있어 참고할 만하다. 조사는 20·30대 청년 1천 명 중 523명은 현장조사로, 그밖에 인원은 온라인에서 이뤄졌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지역 청년들은 청년복지와 고용환경, 주거 여건 및 여가 문화 전반에 걸쳐 현재 불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청년복지와 고용환경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낮았다. 각각 5점 만점(매우 불만족 1점~매우 만족 5점)에 1.98점, 2.20점을 보였다. 이 외에 주거여건은 3.01점, 여가문화는 2.69점이었다.  

    청년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항목은 '고용환경 개선'이었다. 분야 별 개선 혹은 발전 필요성을 묻는 데 대해 고용환경은 5점 만점(매우 불필요 1점~매우 필요 5점)에 4.27점을 기록했다. 그 다음으로는 청년복지가 4.16점, 소득수준이 3.89점, 여가문화가 3.73점이었다.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전주시의회 서난이(30·더불어민주당 청년비례대표) 의원은 "지역특성에 걸맞은 청년지원 정책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진단한다. 서 의원은 "현재 지방의 청년들은 기회의 박탈은 물론 일자리 수와 근로환경에서도 열악한 현실에 놓여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또한 "자신의 지역에 남길 원하는 청년들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이에 대해 그는 '청년들에 대한 개별적 지원'을 대안 중 하나로 제시했다. 

    "지방 청년들이 겪는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은 지역특성에 걸맞아야 해요. 중앙정부에서 획일화 되어서 내려오는 정책으로는 대안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중앙정부 주도하에 만들어진 취업과 창업 관련 정책은 지역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왔어요. 

    물론 현재 지역별로 청년기본조례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는 있어요. 그러나 국비확보를 비롯해 다방면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고로 지역 청년들에 대한 상위법의 제정 필요성이 있어요. 이때에도 물론 지역 청년 정책들의 획일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는 있지만, 여기에 더해 청년들에 개별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에 남길 원하는 청년들도 있으니까요."

    ▲  서난이 의원이 지난 14일 광화문에서 진행된 모 행사에 나서 청년관련 문제로 발제를 했다.

    서 의원이 특히 강조하는 바는 "지방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만이 아니다"라는 점이다. 서 의원은 지방 청년들의 지역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교육과 노동, 주거와 결혼 및 양육과 부채 등 다방면에 걸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지역별로 존재하는 조례들과 상위법령들이 유기적으로 조화, 연동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지방 청년문제를 중앙정부에만 해결해 달라 할 수 있을까

    현 정부가 추진하려는 지방분권이 이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줄 수 있을까. 그러면 좋겠지만 여기에만 기대선 안 될 듯하다. 서 의원 말대로 중앙정부 정책에 각 지역들도 노력을 거쳐야 할 터이다. 지난 2015년 10월 28일, KBS전주총국에서 방영된 <청년에게 말하다>에서 강준만 교수(전북대 신문방송학과)는 전북 시청자들 앞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지방선거 때 여느 지역을 막론하고 가장 많이 나오는 공약이 뭔 줄 아십니까? 우리 지역 인재들이 서울에 가서 높은 주거비용 줄일 수 있게끔 '서울소재 장학숙' 지어주겠다는 겁니다. 학부모들의 교육열을 이용해서 표심 잡으려는 거지요. 이 경우 각 가정들은 좋을지 몰라도 각 지역 대학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리고 지역에 남은 젊은이들은 어떻게 됩니까?"   

    강 교수는 이후 "대학이 기업을 끌고 오는 측면이 있다"면서 "지역 대학을 키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소회를 밝혔다. 지역격차 해소와 지역 청년들의 삶의 질 향상 등 현재 우리 앞에 놓인 과제들을 푸는 몫이 지역의 노력에도 주어져 있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마지막은 지난해 '청년들'이 실시한 조사에서 익명의 지역 청년들이 남긴 다양한 메시지 중 일부다.

    "지방이라고 무시받기 싫습니다. 정보교류의 장과 많이 배울 수 있는 공간에 있고 싶습니다."

    "청년들의 취업기회 확대 부탁드려요. 제발 문화시설도요. 데이트하는데 갈 곳이 없음..."

    "이 지역에선 일자리 찾기가 힘듭니다. 이직하려 해도 마땅한 곳이 없어요."

    "단 하루라도 좋으니 아무 것도 생각지 않고 마음 편히 쉬어보고 싶다"

    "복지 설문 답하기 힘드네요..ㅠㅠ 받아본 적이 없으니, 어떤 복지가 있는지 몰라서요..."

    "젊은이인데... 젊은이답게 살아 봤으면 좋겠다."

    "우리가 잘 개선해 나갑시다. 청년들아,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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