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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만 되면 공시생들을 죄다 처량한 부랑아처럼 묘사하는데 솔직히 불만이에요."


민족의 대명절 설을 맞아 저마다 고향으로 향한 16일 오전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 고시촌. 노량진 생활 3년차인 정모(27)씨는 기자에게 먼저 넋두리를 털어놨다.


정씨는 "설·추석 때마다 '취업준비 때문에 집에도 못가는 불쌍한 노량진 청년들'을 묘사하는 언론보도가 많은데 불쾌하다"면서 "사실 연휴에 노량진에 남은 청년들 중에는 공부를 위해 머무르는 이들만큼 '꿀맛' 휴식을 위해 잔류하는 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노량진 골목골목은 그 어느 때보다 조용했다. 인근 과일가게 사장님은 "(취업준비생들이) 다들 고향에 가서 평소보다 훨씬 한산하다"고 귀띔했다. 그럼에도 문을 닫은 상점들은 많지 않았다. 다만 손님은 그리 많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가 일부 취준생들에겐 달콤한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처럼 보였다. 어딜 가도 사람이 많지 않아 놀기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골목 PC방 앞에서 만난 7급 공무원 준비생 최유호(29)씨는 "오늘은 지방에 계신 부모님께 허락을 맡고 마음껏 쉬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도 많지 않겠다 하루 날잡고 자유롭게 지내고 싶다"고 했다. 


사육신공원에서 만난 한 커플은 노량진 맛집투어를 하는 중이었다. 교원 임용고사를 준비중인 두 사람은 "그동안 가보고 싶었지만 돈 아끼려고 못갔던 맛집들을 오늘 가보려는 참"이라고 했다. 아직 구체적인 장소는 안정했지만 삼겹살, 닭갈비, 치킨집 등 후보지는 무궁무진하다며 웃음지었다. '술도 마실 거냐'는 질문에는 '그렇다'는 남친과 '아니다'는 여친의 대답이 갈렸다.

   

오락실과 코인노래방은 꽤나 활기찼다. 코인노래방 사장 황모(50대)씨는 "연휴에는 평소보다 오래 노는 이들이 많지만 이번엔 예년에 비해 손님 수가 적은 편"이라고 귀뜸했다. 그는 "불경기 때문인지 노량진 노래방 경기가 예전같진 않다"고 푸념을 털어놨다.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취준생들은 심리적으로 더 위축된 모습이었다. 황씨 말마따나 휴식을 취하더라도 유흥시설보단 잠시 조용한 곳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늘고 있다.


노량진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한 카페에서 만난 교사 지망생 박희솔(28)씨가 그런 경우다. 그는 "마음 같아선 친구들과 유흥도 즐기고 싶었지만 포기했다"며 "설날에 쉴 계획은 있었지만 막상 내내 놀자니 부담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노량진 외곽 카페에서 혼자 영화보기. 가까운 곳에 있는 카페는 공부하는 이들이 많아 불안해지고, 휴식은 취해야겠기에 조금 떨어진 카페를 찾아 혼자 2시간짜리 영화를 보기로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물론 잠깐의 휴식조차 허락하지 않은 이들도 있다. 순경 공채 준비생들의 경우 시험이 코앞이라 명절 연휴라도 느긋해질 수 없다. 순경 공채 필기시험은 내달 24일 치러진다. 


이 시험 준비 2년차인 이모씨는 "오늘 잠시 쉬는 것도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자습실로 나왔다"면서 "잠시후 문제풀이 결과가 좋으면 야식이나 어떤 식으로든 내게 보상을 줄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씨는 또 "노량진엔 있는 청년들을 너무 불쌍하게 바라보지 말아달다"고 부탁했다. 언론에서 매사 그런 식으로 묘사하다보니 가족들의 걱정도 더해지고, 스스로 자존감도 더 떨어진다고 했다.


실제로 이날 노량진 청년들의 모습은 '불쌍함'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휴일을 잊은채 공부하는 이들은 진지했고, 잠깐의 꿀맛 휴식을 즐기는 이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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