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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주인들 "집 수리비 800만원 받아도 LH랑은 계약 안해"
    기사 모음 2018. 2. 25. 17:31

    매년 이맘때면 자취를 하려는 대학생들은 마음까지 추워진다. 겨울이라서가 아니라 서러워서다. 방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마음에 드는 방을 알아보기도 어렵지만 운좋게 찾았다 한들 가격이 또 문제다.


    정부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청년 전세임대주택 제도를 통해 청년들 돕기에 나서고 있지만 실효성 논란이 거세다. LH가 대학생·취업준비생 등 제 돈으로 집을 얻기 힘든 이들에게 전세금을 지원해주는 이 제도가 임대인들로부터 외면받는 탓에 되레 청년들의 허탈감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LH 청년 전세임대주택 제도가 임대인들로부터 외면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복잡한 계약 절차 등이 외면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임대인들의 정책 참여를 유도하고자 '(조건부)집 수리비 최대 800만원 지원' 방안을 내놓기도 했지만 이 역시 효과를 볼지는 의문이다.


    ◇ 집주인들 "LH는 까다롭고 부담돼"



    LH 전세임대주택 제도는 2005년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을 위해 처음 도입됐다. 2011년에는 대학생, 2016년에는 취업준비생들로 대상이 확대됐다. 입주대상자들이 거주할 집을 물색해 오면 LH가 주택소유자와 전세 계약을 맺어 재임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전세금은 LH가 지원하며 입주자는 지원금의 이자만 납부하면 된다.


    취지는 좋았지만 결과는 반대인 현실이다. 임대인들이 LH와의 계약을 꺼려하는 탓에 청년들의 허탈감만 가중시키고 있다. 실제 청년들 중에는 입주 대상자로 선정되고도 입주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LH로부터 제출받은 '전세임대 신청 대비 계약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7년 8월까지 당첨자 중 실제 계약을 체결한 비율은 47%에 그쳤다.


    임대인들이 LH와의 계약을 거부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복잡한 계약 절차가 꼽힌다. 임대인-중개인-임차인 사이의 계약에 LH가 끼다보니 임대인으로서는 번거로워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공공기관인 LH가 요구하는 각종 서류와 계약 조건이 지나치게 번거롭고 엄격하다는 게 임대인들의 불만이다. 


    LH에 따르면 전세임대주택 계약 당시 임대인이 LH에 제출해야 할 서류는 계좌이체약정서와 통장사본, 도장, 신분증, 선순위임차보증금확인서다. 이 가운데 선순위임차보증금확인서의 경우 세원 공개에 부담을 느끼는 임대인들이 거절하는 사례가 많아 중개대상물확인설명서로 대체가 가능토록 최근 변경됐다.    


    임대인들은 그럼에도 계약절차 등에 불만을 품는다. LH가 청년들을 지원하더라도 기존 관행과 동일한 계약 체결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예컨대 계약 과정에 LH가 개입할 게 아니라 전세금을 입주 선정자에게 직접 지급하면 될 것 아니냐는 것이다. 지난 20일 기자와 만난 지방의 한 임대인 임모(60대)씨는 "집주인 대부분은 나이든 사람들이라 복잡한 방식으로 변화한 걸 두려워 한다"며 "청년들을 위한 정책이면 청년들한테 직접 지원하는 게 맞지 않냐"고 말했다.


    정부의 감시망에 들어갈 수 있단 점도 임대인들이 LH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다. LH가 임대인들의 불편을 고려해 선순위임차보증금확인서를 대신한 중개대상물확인설명서의 경우 불법건축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어 임대인들의 또 다른 부담이 되고 있다. 물론 위법이란 점에서 문제가 있지만 현실에서 그 수가 적지 않다.   


    서울지역 한 원룸촌에서 영업중인 공인중개사 A씨는 "이 동네에는 옛날부터 불법건축물로 지내온 임대인들이 많다"면서 "오랫동안 그렇게 지내왔는데 이제와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그들 중에서는 생계형인 경우도 많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 '대안' 제시한 국토교통부…임대인·공인중개사들 "글쎄"



    임대인들의 소극적인 정책 참여로 애꿎은 청년들이 피해를 입자 국토교통부는 지난 1일 대안책을 내놓았다. 10년 넘은 전세임대주택에서 8년 이상 장기 전세 계약을 맺는 집주인에게 최대 800만원의 집수리비를 금융지원해주는 게 골자다. 임대인들이 줄곧 말하는 불편을 해소하기보다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부가 하는 일로서 불법건축물 등에 지원을 하기는 어렵다"며 "인센티브를 통해 임대인을 유인하고 청년들은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주거를 확보하게끔 도우려는 취지에서 이 정책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대안책에 대해 그는 "서류 간소화 등을 고려는 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건 없다"고 답했다.   


    이처럼 보완책이 나왔지만 정부와 시장 간 온도차는 크다.


    공인중개사 최모씨는 "다른 지역은 모르겠지만 서울의 경우 돈 800만원에 흔들리는 임대인은 몇 없을 것"이라면서 "지원이 아닌 융자지 않냐. 대학가의 경우 개강시즌에 맞춰 세입자 회전이 잘 되는 상황인데 누가 돈 없어서 수리비 받으려고 그 불편을 감내하겠냐"고 말했다.


    이 지역의 한 임대인도 "수리비를 정부에서 빌려주는 거니까 이자율이 낮기야 하겠지만 그 돈이 당장 급해 LH 세입자를 받는 임대인은 드물 것"이라며 "가장 중요한 건 절차 간소화다. 어떤 식으로든 일반 전세계약처럼 임대인과 임차인이 만나서 계약서만 작성하면 끝인 식으로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꼬집었다. 


    일부에서는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서울 신촌의 한 공인중개사는 "현재 LH 청년전세임대주택 제도에서는 근린생활시설로 지정된 원룸과 고시원 등이 지원대상에서 제외돼 있다"면서 "대학생들의 수요가 많은 그런 곳까지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황모(20대)씨는 "LH 당첨되고 부동산을 수없이 돌아다녔는데 아직도 못 찾고 있다"며 "차라리 고생이라도 덜할 수 있도록 'LH 가능' 전셋집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부동산이 생기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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