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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배꽁초로 친환경 사회 조성 가능하죠"
    우리 이야기 2018. 9. 23. 15:45

    한 고등학생의 꿈이 현실로 이뤄질 수도 있겠다. 지난달 16일 자신을 고등학생이라고 밝힌 한 청원인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담배꽁초 무단투기로 인해 악취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며 “담배꽁초를 퇴비화하자”고 제안했다.

    낯설게 느껴지는 이 제안은 이미 현실로 바짝 다가와 있다. 20여명의 직원들이 속해 있는 ‘이지원바이오’가 지난해 담배꽁초 퇴비화기기 특허를 받았고, 이제 전국 설치를 목표로 달려가고 있다.

    고건호 이지원바이오 대표는 “앞으로는 담배꽁초로 인한 사회적 피해가 없길 바란다”며 “담배꽁초 퇴비화가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 이뤄지도록 해 더욱 깨끗하고 맑은 세상 만들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제가 4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니까요.” 


    고 대표는 환경 친화적 사회조성을 위해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된 사연을 들려줬다. 어느날 길에서 마주한 흡연자들, 그곳을 찌푸린 얼굴에 코를 막고 피해 걷는 비흡연자들, 담배꽁초로 꽉 막힌 빗물받이를 보면서 그는 담배로 인한 피해를 줄여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고 대표는 담배로 인한 사회적 피해를 알아보며 크게 놀랐다. 담배가 개인은 물론 사회에도 약영향을 주리란 예상은 진즉 했지만 문제가 생각보다 심했다. 장마철 빗물받이 역류의 주요 원인은 담배꽁초이며, 그 때문에 서울시에서만 한해 약 70억원을 쓴다.

    고 대표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앞서 줄기세포사업을 하며 어려움을 겪었던 그는 마침 다른 사업 아이템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담배로 인한 갖은 문제들을 해결한다면 분명 성공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또 다른 이유는 가족 때문이었다. 원래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고 대표는 오래 전부터 딸들에게 ‘멋진 아빠’가 되어주고 싶었다. 가족들이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이유를 단 한 가지만이라도 갖추고 싶었다고.

    “내 딸들이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가게 하고 싶었어요. 또 더 나은 세상에 제가 기여하고 싶었어요. ‘우리 아버지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이것 하나는 해내셨다’는 자부심을 딸들에게 주는 게 꿈이었죠. 담배에 따른 사회문제를 해결하면 가능할 것 같더라고요.”


    줄기세포 사업을 하며 겪었던 고초에 대한 보상일까. 시중에 유통 중인 농약에도 니코틴이 들어간 만큼, 담배꽁초 퇴비화도 가능할 것이란 구상에 더해 지인의 도움도 따라왔다. 미생물을 잘만 활용한다면 고 대표의 구상이 현실이 되리란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다가 지난해 6월, 마침내 미생물을 통한 담배꽁초 퇴비화기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미생물연구소를 이끌었던 지인의 도움과 함께 연구개발에 몰입한지 약 1년만이었다. 담배꽁초 때문에 발생했던 사회적 비용도 큰 폭으로 줄이고, 세계 진출의 꿈까지 갖게 됐다.

    그해 9월 담배꽁초 퇴비화기기는 국회 시연을 거쳐 6개월 만에 시민들을 찾아갔다. 지난 3월 경기 구리시와의 업무협약을 시작으로, 경남 하동군 등 여러 지자체가 이 기기를 들였다. 현재도 많은 지자체가 관심을 보이고 있어 고 대표는 어느 때보다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중국 심양에서 열린 ‘2018 APEC 전시회’에도 참가했다. 이날을 계기로 고 대표는 중국 심양을 비롯해 일본쪽 관계자들을 만나는 것도 일상이 됐다. 이는 담배꽁초로 인한 문제를 해외도 맞닥트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국과 일본도 담배 수요가 많잖아요. APEC 전시회 당시에도 그랬어요. 회의장 바깥에 흡연장소가 있었는데 제가 일일이 담배꽁초를 줍고 다녔어요. 그걸 다 모아서 우리 퇴비화기기에다 넣었는데, 그 모습을 본 중국 등 해외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연을 맺게 됐죠.”


    이 기기는 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담배꽁초 퇴비화기기는 겉만 보자면 특별할 게 없다. 언뜻 의류수거함 같기도 하고, 파쇄기 같기도 했다. 직사각형 모양의 커다란 통 위에 뚫려있는 네모난 입구. 그게 끝이었다.

    하지만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 통 안에선 수거 된 담배꽁초들이 360도로 회전하는 기계를 통해 갈기갈기 찢겨지며 분해됐다. 고 대표에 따르면 담배꽁초들을 한데 모아 완전 분해하기까지는 5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첫 개발 당시 24시간이 걸렸던 것을 개조개발 끝에 이 같이 줄였다.

    냄새 문제도 해결했다. 미생물을 이용한 천연탈취제를 통해서다. 이는 고 대표가 사업구상 초반 담배꽁초 악취에도 문제의식을 느꼈던 데 따른 해결책으로 개발됐다. 고 대표는 악취의 원인균 박멸에 특히 신경을 썼다고 전했다.

    담배꽁초 끝에 있는 필터는 어떻게 될까. 문제가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고 대표는 필터의 펄프를 분해하는 미생물을 개발했다. 또 궐련형 담배도 일부 종이 연초담배와 다른 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분해시간이 조금 길뿐 분해는 가능하단 설명이다.

    “산에 가면 나무가 죽어서 썩잖아요. 그게 순수 바람에 의해 썩는 게 아니고, 미생물에 의해서 썩는 거에요. 그것처럼 담배 연초는 한 달이면 눈에 안 보이고, 필터가 10년 이상 간다고들 하는데 처리시간을 크게 단축할 미생물을 연구해 개발한 거죠.”

    미생물의 정체를 묻자 고 대표는 환하게 웃으면서도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신 '유명 맛집의 소스 비결은 비밀에 부치는 법'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이 미생물을 통한 퇴비화기기는 지난해 8월 특허를 받은 상태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퇴비로 재탄생한 담배꽁초들은 골프장, 가로수, 목장 등에서 활용될 전망이다. 이 퇴비의 기능성은 농촌진흥청의 검증도 마친 상태다. 고 대표는 “해충과 진딧물을 없애는데 분명히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런 한편 그는 담배꽁초 퇴비화는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자원순환을 통한 친환경 사회조성을 위해서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았다고 했다. 그의 최종 꿈은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석탄재 재활용을 가능토록 하는 것이다.

    고 대표는 “미생물은 저 우주의 화성을 또 다른 세상으로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갖췄을 정도로 유용하다”며 “갈 길은 멀지만 적어도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라도 우리가 만든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담배꽁초 때문에 겪은 문제는 우리가 만들었다. 미세플라스틱이 물고기를 거쳐 다시 인간에게 오듯, 순간 버린 담배꽁초도 결국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다. 고 대표가 담배꽁초 퇴비화를 위해 노력해 온 이유다.

    “제가 4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니까요. 아무래도 비흡연자보다는 흡연자가 담배에 대해서는 더 잘 알 테니까요. 담배를 왜 길에다 버리는지, 담배 속은 무엇으로 구성돼 있는지 알아야죠.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친환경을 위해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됐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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