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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기자의 비교체험] 텀블러 vs 일회용컵, 열흘간 살아봤다
    기사 모음 2018. 11. 15. 09:37

    서 기자 / 시커먼 텀블러를 가방 안에 넣었다. 부엌 찬장에 놓인 3개의 텀블러는 모두 사은품이다. 이중 가장 최근에 받은 걸 골라 집었다. 가방이 묵직했다. 노트북을 뺄 수 없으니 텀블러를 두고 가야하나 잠시 고민했다. 출근길 발걸음도 무거웠다. 텀블러 한 개의 무게는 일회용컵 36개 정도, 괜한 투정이 아니다.

    ‘제로웨이스트’ 체험을 시작한 지난달 31일, 첫 출근길부터 잡다한 생각이 머리 속에 스몄다. 제로웨이스트는 생활 속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고, 어쩔 수 없이 쓰게 된 것은 재활용하자는 운동이다. 무분별한 자원 사용으로 넘쳐나는 쓰레기를 줄여보자는 취지다. 체험을 결심한 건 찝찝함 때문이었다. 플라스틱컵 관련 기사를 쓰고 있는 노트북 너머로 일회용컵들이 널브러져 있는 모습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 모순을 치워보기로 했다.

    ◇텀블러는 요술방망이?…액체라면 뭐든 담아

    한국 성인 한 명의 연간 커피 소비량은 평균 512잔. 하루에 대략 1.5잔을 마신다. 그만큼 일회용컵도 많이 배출한다. 충분히 줄일 수 있지만 포기해 왔다. 귀찮아서다. 내 몸뚱이가 남기는 부산물 중 가장 만만한 품목인데도 그렇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는 제로웨이스트 취지를 따라 일회용컵을 먼저 줄여보기로 했다. 체험에 앞서 자문해 준 제로웨이스터 배민지 쓸 편집장도 텀블러 사용을 강추했다. 일주일 체험 동안 텀블러는 어디서든 '요술방망이'처럼 쓰였다.

    체험 첫날 이 기획에 동참(?)하게 된 주현웅 기자와 출근길에 시청에서 만났다. 지난 발제회의 때 국장은 '서 기자가 안 쓴다면 주 기자는 쓴다는 방향으로 가보면 어떻겠냐'고 넌지시(물론 거부할 수 없게) 물었다. 그렇게 주 기자는 이번 기획에 발을 들였다.

    커피 두 잔을 주문하고 카드를 내밀었다. 자의반타의반 시작한 기획기사를 함께 잘 준비하자는 의미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일회용 플라스틱컵과 알루미늄 텀블러에 각각 담겼다. 텀블러에 입을 대자마자 익숙했던 일회용컵과 빨대 맛이 그리워졌다. 이 집 커피 맛이 언제부터 이렇게 썼나.

    환경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일회용컵 사용량은 260억개다. 그중 플라스틱컵은 26억개. 그나마 위안이 됐다.

    일회용 플라스틱컵 1개를 만들고 폐기하는데 23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종이컵은 11g이다. 연간 사용량을 계산해보면 일회용 플라스틱컵은 5만9800톤, 종이컵은 25만7400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자원순환사회연대 추산에 따르면 이중 재활용되는 일회용컵은 2%도 되지 않는다. 프랑스 정부가 2020년부터 일회용 플라스틱 식기 사용을 전면 중단하는 게 괜한 행동이 아니다.

    그렇다고 텀블러 사용이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생산단계부터 세척용수 및 세제 등이 끼치는 환경문제를 고려하면 여러 번 사용해야 환경보호 효과가 있다. 캐나다 환경보호·재활용 단체 CIRAIG는 2015년 보고서에서 재활용컵은 최소 20~100회 정도 사용해야 환경보호에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한 달만 꾸준히 사용해도 제 값 한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9일까지 열흘 동안 16개의 일회용컵을 안 썼다. 출근길 일회용 플라스틱컵부터 식당 내 종이컵도 텀블러로 대체했다. 회식자리에서도 텀블러는 빛났다. 금요일 회사 사옥에서 진행된 바비큐 파티에서 텀블러는 소주·맥주·양주까지 모든 걸 소화해 냈다. 숯불에 잘 구운 목살은 박 선배의 개인용 젓가락을 빌려 먹었다.

    일주일에 3번 정도 마시던 편의점 아이스커피도 체험기간 끊었다. 무조건 일회용컵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카페 아메리카노와 달리 약간 달달한 그 맛이 그리웠으나 참았다. 텀블러를 깜빡하고 두고 나왔을 때는 커피를 포기했다. 그런 경우가 2번 있었다. 체험기간 일회용컵을 사용한 적은 딱 한 번 있었다. 매주 수요일 있는 독서모임을 위해 간 카페에서 “이 텀블러에 담으면 넘친다”는 말에 “그럼 그냥 일회용컵에 주세요”라고 말했다. 체험 첫날이라 텀블러만 생각하다 한 실수다. 다음 주 모임 때는 머그잔에 받았다.

    그 외 소소한 실천을 했다. 서울 종로구 동태찌개가 맛있는 식당에서는 제공하는 물티슈를 고히 그 자리에 뒀다. 신촌 갈비탕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열흘간 딱 한 번 방바닥을 청소할 때는 걸레를 사용했다. 평소엔 물티슈 3~4장을 썼었다. 밤 10시 반 수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떨이로 팔던 바나나 한 송이는 비닐봉투 대신 손을 사용해 들고 왔다. 세탁소에 드라이를 맡긴 양복을 찾아오면서는 비닐봉투를 씌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체험기간 실천하지 못한 것도 있었다. '큰일'을 치르고 난 뒤 휴지는 필요했다. 물을 끓여 먹지 못 했다. 주전자, 보리차, 물 담을 통까지 구입해야 했는데 늘 깜빡했다. 집에 들어가면 쉬기 바빴다. 냉장고 안에 이미 2리터 생수 두 통이 있던 탓도 컸다. 이들은 누가 구제하나 싶었다. 콜라·라면도 쓰레기 배출없이 먹을 수는 없었다.

    고작 그것 아껴서 뭐하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고나니 초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노력은 쌓인다. 1인당 일회용컵 사용을 1개씩만 줄여도 하루에 약 350톤의 온실가스가 감축된다. 이게 쌓여 1년이면 꽤 큰 결과물이 된다.

    비닐봉투도 마찬가지다. 2015년 기준 1인당 연간 비닐봉지 사용량이 420개인 우리나라 인구가 1년 중 단 하루 비닐봉투를 쓰지 않기로 하면 어떻게 될까. 자원순환사회연대에 따르면 5200만장의 비닐봉투가 절약돼 이산화탄소 배출량 약 6700톤이 감축될 수 있다.

    플라스틱과 비닐은 썩는 데 100년 이상이 걸린다. 지금 먹고 버린 스타벅스 플라스틱컵이 2218년 서울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발견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당장 콜라·라면을 피하기 힘들다면 텀블러 하나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체험 마지막 날인 지난 9일, 텀블러도 깜빡한 김에 플라스틱컵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았다. 입으로는 “아 간만에 플라스틱…”이라고 읊조렸지만, 내 몸은 그새 텀블러에 먹는 커피 맛에 익숙해진 듯 했다.

    ◇평소처럼 산 열흘…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주 기자 / 금요일이었던 지난달 26일 오후 편집국 사무실. 아이디어 회의 내내 기분이 괜찮았다. 꿀 같은 주말이 “어서와~ㅋㅋ”하고 속삭였다. 주말을 지내면 월급날이었다. 간만에 가시방석 대신 솜방석에 앉은 듯했다. 국장은 어김없이 레이저를 쏘며 “다음주 발제는?”하고 물었지만 “태양광 패널의 EPR(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적용…업계 반발이…”라고 여차저차 넘겼다.


    모든 위기를 극복한 듯했다. 서 기자가 야심차게 ‘제로 웨이스트’를 한 주간 체험해보겠다고 발제하기 전까지는. '그러거나 말거나'하며 남 얘기인 셈 치고 넘겼다. 그 순간 국장이 말했다. “그럼 현웅이가 평소처럼 일회용 쓴 걸 기록해봐. 창완이랑 둘이 비교하는 형태로 가보자.”

    저 인간(서 기자) 때문에 되는 일 참 없다 싶었다. 난 커피 마시는 게 하루의 낙이다. 그런 내가 커피 한 잔 마실 때도 기사를 떠올려야 할 처지가 됐다. 하지만 조금 궁금하긴 했다. 내가 한 주 동안 발생시키는 일회용품 쓰레기가 어느 정도일까. ‘그린 이노베이터(Green Inovator)가 돼라’는 대표의 말을 대놓고 어겨보기로 했다.

    체험 첫날. 출근길에 서 기자와 만나 카페를 들렀다. 서 기자는 내심 미안했는지 본인이 계산하겠다고 했다. 지갑 꺼내고, 카드 꺼내고, 쿠폰을 찾는 모습이 참 분주해 보였지만, 가방 속에서 무언가 꺼내는 모습이 특히 부산스러웠다. 텀블러였다. 제로웨이스트 실천, 시작부터 꽤 중노동이다 싶었다. 나는 일회용컵을 받았다. 편했다. 가벼웠다. 새삼 ‘플라스틱의 위대함’을 느꼈다.

    같은 날 점심. 서 기자와 식당을 함께 갔다. 자주가던 가게였다. 테이블에 종이컵이 눈에 띄었다. 이전에도 왔었던 식당인데 물컵이 종이컵이란 사실을 체감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서 기자는 습관처럼 종이컵을 쓰려다 ‘아차’하고 손을 뗐다. 텀블러를 깜빡하고 못 챙겨왔단다. "물도 못 마시고 망했다”는 그의 신세한탄을 반찬 삼아 점심을 즐겼다.

    이 같은 생활패턴을 반복하고 이틀 뒤 회사로 출근했다. 책상에 차마(실은 귀찮아서) 버리지 못한 일회용 플라스틱컵들이 쌓여있었다. 바로 옆 서 기자 책상은 웬일로 깨끗했다. 상대적으로 내가 지저분한 인간이 된 듯했다. 그때 옆 서 기자의 핀잔도 들여왔다. “환경매체 기자 책상이 이게 뭐냐!”. 분명 더 편해서 좋긴한데 이런 소리까지 듣게 되다니. 잘 이해가 안갔지만 왠지 알 것만 같았다.

    지난 열흘 동안 서 기자가 아끼고, 내가 써온 일회용품 쓰레기는 어느 정도였을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얼마나 썼나 계산해봤다.

    일회용 플라스틱컵 1개를 만들고 폐기하는데 23g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고 한다. 종이컵은 11g이란다. 나는 일회용 플라스틱컵 19개와 종이컵 6개를 썼으니, 우선 503g의 이산화탄소 배출에 기여한 셈이다. 물론 일회용 빨대도 썼고 나무젓가락도 썼고 비닐봉투도 썼다.

    내가 버린 것 중 가장 몸집이 큰 일회용 플라스틱컵들의 미래를 생각해 봤다. 일부 부위는 떼어져서 재활용될 수도 있고, 나머지는 최소 20년을 안 썩고 세상을 떠돌겠지. 어쩌면 그 정도 세월이 흘러 역사적으로 상봉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미세한 입자가 돼 마시는 물에 섞여 내 몸 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으니.

    전부 계산하진 않았지만 한 눈에 봐도 서 기자는 꽤 환경보호에 기여한 듯 했다. 나 혼자 500g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사흘 만에 배출했지만, 그 책임은 서 기자가 함께 나눈다 생각하니 괜히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만든 미세플라스틱이 서 기자 몸속으로 갈 수 있을지 모른다.

    지난 9일 아침에도 서 기자와 카페로 향했다. 서 기자는 어느새 제로웨이스트 생활에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카페가 눈에 들어오자 그는 등을 ‘탁’ 튕기면서 백팩을 내려놓더니 재빠르게 지퍼를 열고 텀블러를 빼냈다. 보아하니 일찍이 빼기 좋은 위치에 텀블러를 넣어두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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