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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년엔 학교 공터를 숲속 교실로 꾸밀거예요"
    우리 이야기 2018. 12. 20. 14:24

    외국에서 생산된 음식의 재료가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만약 ‘밀’이라면, 먼저 농약과 화학비료가 쓰일 테다. 이는 선박을 통해 국내에 들어오고, 다시 매연을 내뿜는 트럭에 실려 공장으로 간다. 공장에서 밀은 방부제 첨가 등의 작업을 거쳐 빵이 된다. 빵은 종이나 비닐로 포장되고, 소매점과 우리 식탁을 거쳐 다시 쓰레기를 남긴다.

    쉽지만은 않은 내용이다. 하지만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숭문중학교 학생들에겐 그리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곳 학생들은 오히려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학생들은 지속가능한 사회 만들기를 위해 모든 사람의 ‘행동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18일 수업이 한창인 숭문중 한 교실. 점심시간 직후여서 졸릴 때지만 2학년 2반 학생들이 들뜬 모습으로 ‘e로운교실’에 들어왔다. 학생들은 수업 시작 직전까지도 “오늘은 뭘 할까” 궁금해하고, 저마다 바라는 내용을 말하기에 정신없어 보였다.

    수업 시작과 동시에 분위기가 달라졌다. 기대감에 가득찼던 교실이 아쉬움으로 대체됐다. 수업을 담당하는 신경준 교사의 “오늘이 올해 마지막 수업”이란 말 한마디 때문에. 

    수업 만족도가 학생·학교장·교사 모두 5점 만점에 4점대를 보인다는 얘기가 진짜였음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숭문중은 환경부가 지정한 전국 16곳의 '꿈꾸는 환경학교' 중 한 곳이다.

    이날 숭문중 2학년 2반 학생들의 환경수업은 지난 1년간 학습한 내용, 그리고 자신들과 주변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최원형 작가가 쓴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의 독서 소감을 발표하기도 했다.

    박정민군은 “인간의 이기심을 떠올려 보게 됐다”면서 “동물실험의 실상이 너무 잔인하다”고 버럭 화를 냈다. 또 “물건의 인과관계도 곱씹어 봤다. 모든 물건은 내게 오기까지 수많은 과정을 거친 만큼 전부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준서군은 ‘사라져가는 것들’을 생각해 봤다고 했다. 박군은 “옛날에는 쇠똥구리가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면서 “오늘날 사람들이 소의 먹이에 항생제를 넣어서 그런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신 교사는 학생들의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 조별 게임을 진행했다. ‘생물종 다양성 카드게임’이다. 카드 앞면에는 학교에 있는 생물종 사진과 그의 이름이 초성으로 적혀 있다. 정확한 이름을 맞춘 사람이 카드를 한 장씩 가져가는 게 규칙이다.

    처음 제시된 카드 ‘ㅁㄱㅈㄹㄱ’. 난이도가 상당했다. 그런데 학생들은 ‘미국자리공’이라고 곧잘 맞췄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없애야 할 생물종”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뿌리와 열매에 모두 강한 독성을 갖고 있다”는 대답이 술술 나왔다.

    이처럼 환경을 주제로 울고 웃던 교실 분위기는 다시 조용해졌다. 신 교사가 한 편의 동영상을 보여주면서다.

    영상은 한국의 쓰레기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필리핀 한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 영상이 재생된 10여분 간 교실 분위기는 숙연하기까지 했다. 학생들은 필리핀에 쌓인 어마어마한 한국발 쓰레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신 교사는 “필리핀의 중학교 2학년 학생으로 변신해서 한국인에게 한 줄의 편지를 써보자”고 제안했다.

    필리핀 학생들은 한국인에게 뭐라고 말했을까. 석동빈군은 “필리핀은 한국의 쓰레기통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다른 학생들도 ‘한국 쓰레기, 한국이 갖고 가라’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야죠’ ‘Because of your trash, we are dying of smell’ 등 따끔한 메시지를 전했다.


    숭문중 환경수업은 이처럼 환경지식을 전달하는 데 국한하지 않는다. 그에 앞서 환경감수성을 기르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신 교사는 “환경문제는 곧 나, 우리의 문제라는 것을 알도록 하는 것이 환경교육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환경지식 역시 도외시하지 않는다. 신 교사는 “감수성, 지식, 시스템사고, 환경정의, 행동과 실천 순으로 교육이 이뤄진다”고 했다. 실제로 이날 수업이 이뤄진 교실은 이 모든 과정을 한 데 묶고 있었다.

    학생들은 최근 폴란드에서 열린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의 결과를 살펴본 한편 내년에는 학교 공터를 숲속 교실로 꾸미자고 약속했다. 전기 안 쓰는 카페로 유명한 서울 불광동의 ‘비전화 카페’를 참고하기도 했다.

    수업이 끝난 뒤 학생들이 떠난 교실은 여전히 화사했다. 신 교사는 “학생들의 정성이 곳곳에 묻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푸른 식물들이 천장과 벽면, 바닥을 메웠고 나무젓가락 등으로 만든 조각물들이 학생들의 아이디어라고.

    올 한해 학생들에게 환경수업은 어땠을까. 박준서군은 “친구들과 함께 활동할 수 있어서 가장 좋았다”며 “환경문제가 어떻게 발생하고, 그 이후의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려 보게 한 특별한 시간들이었다”고 말했다.

    석동빈군은 “환경수업을 들으면서 영화 설국열차가 다르게 다가왔다”며 “미국 어느 더운 지역에 눈이 내렸다는 뉴스를 보고, 설국열차의 빙하기가 먼 얘기가 아닐 수도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석군은 이어 “우리나라도 부모님 세대는 어려서 마음껏 뛰어놀았지만, 지금은 미세먼지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며 “더 많은 사람이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친환경적 생활실천에 나섰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한편, 우리나라 중·고교의 환경과목 채택률은 매년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7년 20.6%(1077개교)를 보인 채택률은 2010년 16.7%(889개교)로 떨어졌고, 2013년 9.8%(573개교), 2016년 8.9%(496개교)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

    반면 북미와 유럽의 공교육은 일찍이 환경교육을 정규과목으로 편성했다. 다른 과목과 비교해 중요도 또한 높게 책정돼 있다. 미국은 1970년 환경교육법을 마련해 교육기관에 환경교육 프로그램을 수립 및 지원한다. 핀란드는 모든 과목에 환경 관련 내용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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