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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환경법!] 대기오염 때문에 시민 건강 악화…국가 책임이 없을까
    기사 모음 2018. 12. 24. 12:47

    ‘환경쿠즈네츠 곡선’이란 게 있다. ‘∩’자 모양으로 생긴 이 곡선은 국가가 일정 수준의 경제발전을 이루면 환경이 갈수록 깨끗해지는 현상을 보여준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더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달리 말하면 경제가 발전할수록 오염된 환경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커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경우 환경분쟁이 늘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환경분쟁을 어떻게 풀고 있을까. <그린포스트코리아>와 환경 전문 법무법인 '도시와사람'이 함께 들여다봤다. 이를 통해 환경법에는 어떤 내용이 있는지, 혹시 문제는 없는지, 또 알아두면 쓸 데 있는 내용은 무엇인지 등을 소개한다. 구성은 법원의 판례를 중심으로 이야기 형태로 각색했다.

    2010년 서울.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던 권모씨 등은 자신들의 질병이 오염된 공기 때문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매연이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을 초과함에도 그 주범인 자동차들이 멀쩡히 도로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황당했다.

    가장 화나는 것은 이 나라, 그리고 전국에서 가장 교통량이 많은 서울시였다. 환경 정책을 제대로 수립하면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권씨 등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현대차를 비롯한 7개 자동차 제조사와 서울시,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권씨 등 시민

    현대차 등 7개 자동차 제조회사들은 자사의 차량이 서울의 도로를 통행하면서 엄청난 대기오염을 발생시킬 것을 충분히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대기오염물질의 배출방지 조치 없이 엄청난 양의 자동차를 제조·판매합니다. 고의적으로 시민 건강에 해를 입힌 거지요.

    또 대한민국과 서울시는 환경 정책을 제대로 수립해 대기오염 피해를 방지할 의무가 있잖아요. 하지만 이에 게을렀기에 많은 시민이 호흡기 질환에 걸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국가배상법에 따라 대기오염으로 건강 피해를 입은 시민에 손해배상을 해줘야 합니다.

    현대차 등 자동차 제조사

    자동차 배출가스가 대기오염의 주된 발생원이라고요? 어떤 증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설령 자동차배출가스가 시민 건강을 악화시켰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기업이 이를 예상할 수 있었다는 점은 납득이 안 됩니다. 저희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

    대한민국·서울시

    대기오염과 시민의 건강 사이의 역학적 인과관계가 아예 없을 수는 없겠죠. 그런데 역학적 인과관계라는 건 집단을 대상으로, 다른 요인이 모두 같다는 전제로 추정합니다. 대기오염과 특정 개인의 구체적 질병 발생 원인을 연관 짓긴 어렵다는 거에요. 손해배상은 무리에요.




    1심 재판부(2010년 2월)

    미세먼지의 농도변화와 호흡기 질환 사이에 유의미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연구결과는 상당수 있습니다. 하지만 권씨 등의 호흡기 질환과 자동차 배출가스의 인과관계는 또 다른 문제로 보입니다.

    자동차 배출가스가 권씨 등에게 호흡기 질환을 안겼다고 볼만한 직접적인 자료가 우선 없습니다. 또 자동차 배출가스가 대기오염의 주요 배출원이라고 인정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도 아직은 의문이고요.

    그런 면에서 권씨 등이 제출한 각종 증거 및 역학연구 결과만으로 이 사건의 실체를 입증하긴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피해자들이 자연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증명하기도 힘들겠죠? 아쉽지만 본 재판부는 이번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합니다.

    2심 재판부(2010년 12월)

    우선 권씨 등의 호흡기 질환이 자동차배출가스 때문인지는 1심 때와 같이 증명이 어려워 보입니다. 잘잘못을 따질 수 없는 만큼 이번 법정 역시 해당 건은 다루지 않겠습니다.

    다만, 자동차 제조회사가 고의로 기준치 이상의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했는지는 따로 살펴봤습니다. 그 결과 고의성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더군요. 심지어 법령이 정한 배출가스 규제기준을 위반했다는 증거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수많은 자동차가 서울시에 한 데 모이면 배출가스가 엄청 심하겠지요. 그런데 이는 자동차 제조사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자동차들이 서울시에 모이는 걸 기업이 막을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면 대한민국과 서울시가 대책 마련을 소홀히 해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은 어떨까요. 이 역시 들여다봤습니다. 국가와 지자체는 시민에게 쾌적한 공기를 제공할 의무가 있더군요. 그렇지만 이는 공공 일반의 전체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겁니다. 특정 개개인을 위한 게 아니고요.

    따라서 본 재판부 역시 대한민국과 서울시, 자동차 제조사들이 권씨 등에게 피해를 보상할 의무는 없다고 판단합니다.

    대법원(2014년 9월)

    대기가 오염되긴 했죠. 자동차배출가스도 분명 영향을 주긴 줬을 겁니다. 그리고 권씨 등은 그런 오염된 공기를 마시며 살았죠. 여기까지만 보면 자동차의 배출가스가 공기를 오염시켰고, 권씨 등이 그런 공기를 마심으로써 건강이 악화됐다고 볼 여지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좀 더 따져봐야 합니다. 예컨대 똑같이 오염된 공기를 마시고도 호흡기 질환에 안 걸린 사람이 많잖아요. 즉, 권씨 등이 앓는 호흡기 질환의 직접적 원인이 대기오염 때문은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선천적 요소 등 다른 요인들이 있을 수 있단 것이지요.

    권씨 등이 대기오염에 노출되기 전의 건강상태, 생활습관, 질병 상태의 변화 및 가족력 등을 추가로 증명하면 이 문제의 잘잘못을 따져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증명은 이뤄지지 않았네요. 따라서 대법원은 1심 판결과 같이 이 건을 기각합니다.

    이승태 변호사

    지난번 두 차례에 걸쳐 알아본 내용 기억하시나요? 오염원이 발생, 그것이 특정 사람이나 장소에 도달돼 피해가 발생하면 인과관계가 어느 정도 증명된 것으로 본다는 내용이었어요. 이런 논리대로라면 위 소송은 법원의 판단이 뭔가 잘못돼 보이지 않나요? 대기오염이 발생했고, 권씨 등은 나쁜 공기를 마셨으며, 질환을 앓았으니 인과관계가 증명된 듯하잖아요.

    하지만 이번엔 경우가 달랐습니다. 물론 이유가 있습니다. 법원은 호흡기 질환이 ‘비특이성 질환’이란 점을 고려한 겁니다. 호흡기 질환이 특이한 성질을 지니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이 경우 인과관계가 일면 증명됐더라도, 원인을 ‘특정’할 수 없잖아요. 호흡기 질환이 꼭 대기오염 때문인지 알 수 없고, 만약 대기오염 때문이라도 어느 정도의 피해를 줬는지 확인도 어렵죠.

    이번 판례가 의미를 지닌 대목이 여기에 있습니다. 오염물질의 발생, 도달, 손해발생만 입증하면 인과관계가 추정된다는 ‘피해자의 입증책임 완화이론’에 대해 사실상 한계를 설정한 판례로 볼 수 있어서에요. 만약 권씨 등 원고측 주장이 반영됐다면, 국가와 회사가 모든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했어야 됐을 텐데 현실을 감안한 판단으로서 합리적인 측면은 있습니다.

    다만, 피해자가 △대기오염에 노출된 집단과 노출되지 않은 집단의 대조 결과 △노출된 집단에서 질환에 걸린 비율 △노출된 집단에 속한 개인의 노출 빈도 △발병 시기와 그 이전의 건강상태 △평소 생활습관과 질병상태의 변화 및 가족력 등을 전부 증명해야 한다는 점은 지나치게 무리한 입증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보시다시피 현실에서 배기가스나 미세먼지로 인한 피해에서 벗어날 권리를 사법부를 통해 확보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미세먼지 등의 대기오염물질로 인한 개인과 사회의 피해가 나날이 심화하고 있는 바, 행정당국이 올바른 현실 인식을 갖고 대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겠죠. 물론 우리는 친환경적 생활실천에 노력하고요.

    ◇이승태 변호사는 제40회 사법시험 합격(1998년), 현재 법무법인 '도시와사람' 대표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윤리이사(2015.2~2017.2), 국무총리실 자체평가위원회 위원(2014.11~현재), 한국환경법학회 정회원(2015.7~현재), 환경부 고문변호사(2018.4~현재), 국토교통부 고문변호사(2014.1~현재)로 역임 또는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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