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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스 벨 늦게 눌렀다고 '버럭' "우리 엄마도 버스타는데... 미안하죠"
    우리 이야기 2017. 8. 3. 00:36

    버스기사는 이럴 때 조금 '짜증'이 난다.

    [사례 하나] 둘 이상의 손님이 서로의 요금을 내주겠다며 옥신각신할 때. 기사로서는 승객이 빨리 자리에 앉든, 손잡이를 잡고 서든지 해야 출발할 때 마음이 놓인다. 승객이 넘어져서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니까. "두 명이요"라고 말할 거면 빨리 말해주는 게 좋다. 

    [사례 둘] 학생이 일반카드 들고 "학생이요"라고 할 때. 특히 오후 4시쯤, 학생들 하교 시간이 되면 기사는 어지럽다. 학생·성인들이 뒤섞이며 물밀듯 올라타는 상황에서 몇몇 학생들이 일반카드를 들고 "학생이요"라고 말하면 기사는 손도 머리도 바빠진다. 학생은 학생카드를 마련해 두는 게 좋다고.

    [사례 셋] 뒤늦은 하차벨 타이밍. 가끔 스마트폰 보느라 하차벨을 늦게 누르는 승객들이 있다. 그러면서 "신호 걸렸으니 내려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기사 입장에선 선뜻 승낙하기 어렵다. 예기치 않은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거니와 차선 변경이 어려워지는 등 운전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차벨은 빨리 눌러주는 게 좋다. 

    승객입장에서는 '버스기사가 뭐 이런 걸 갖고 짜증까지 낼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한 가지, 버스기사도 똑같이 "내가 뭐 그런 거 갖고 짜증을 냈을까"라고 느낀다는 점이다. 

    지난 7월 30일 기자와 만난 박정혁(50대, 가명)씨는 버스기사들의 솔직한 속내를 들려줬다. 그는 "여태껏 버스기사로 일하면서 승객들에게 '몹쓸짓'을 많이 했다"라며 반성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편하게' 일해도 10시간 운전... "친절하려고 노력하지만"

    7월 30일 오전 5시 30분 전북의 한 버스회사. 동이 막 틀 무렵, 거의 텅 빈 거리, 그래서 한적하기만 한 동네와 달리 이곳은 제법 부산스러웠다. 말끔한 옷차림의 중년 남성들이 요금통, 번호판 등을 들고 바삐 움직였다. 모두 운행을 준비 중인 버스기사들이었다.

    이들 중 기자를 맞이해준 박정혁씨는 유독 활기가 넘쳐 보였다. "원래 성격도 밝은데 오늘은 편한 노선을 맡았다"란다. 게다가 주말, 퇴근도 '빨리' 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고(근데 이날 박씨의 퇴근 시각은 밤 11시였다). 

    "그래도 힘들지 않으세요?"

    기자의 물음에 박씨는 "괜찮다"고 답했다. 

    "힘들죠.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나요. 그래도 괜찮아요. 요새 언론들 보니까 버스기사들을 죄다 무슨 좀비처럼 만들어 놨더라고요. 밥도 못 먹네, 잠도 못자네... 그런 것들만 부각시키니까 가족들 얼굴 보기도 민망해요. 우리도 어엿한 가장이고, 시민들의 발이라는 직업적 자부심을 갖고 일해 왔는데..."

    몇 마디 나누다 보니 오전 6시. 박씨가 버스를 타고 차고지로 향했다. 첫 손님을 태우기 전 이곳에서 10분 정도 쉰다고 한다. 차고지의 모습은 드넓은 주차장과 비슷했다. 멀찌감치 있는 컨테이너 한 채는 기사 휴게실이라고 했다. 화장실은 따로 없었다. 박씨는 "차고지마다 다르지만 휴게실과 화장실, 식당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곳은 드물다"라고 설명했다.

    오전 6시 13분. 땡! 하자마자 박씨가 첫 정류장으로 출발했다. 2분 전부터 운전석에 가만히 앉아 대기한 그였다. 승객은 많지 않았다. 세 번째 정류장을 지나도록 타는 이가 없었다. 박씨는 "주말에는 원래 승객이 적다"고 했다. 평일에는 아침부터 출근하는 직장인과 등교하는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단다. 평일과 주말이 따로 없는 버스기사라지만, 이들도 그래서 주말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주말이라고 해서 편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버스기사는 하루에 자신의 노선을 몇 바퀴나 돌아야 할지 정해져 있다. 박씨 말에 따르면 대개 8~13바퀴 정도가 하루 할당 횟수라고 한다. 박씨의 경우는 이날 10바퀴를 돌아야 했다. 그의 노선은 한 바퀴 도는 데에 주말엔 1시간, 평일엔 그보다 10~20분 더 소요된다. 결국 '편한 날'이라던 이날, 박씨가 실제 운전대를 잡은 시간만 10시간이었다.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다.    

    물론 박씨는 운전을 하는 게 '직업'이다. 고로 운전을 오래 한다는 그 자체만 두고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다만 그에 따른 보상과 적절한 휴게시간, 체계적인 업무 시스템이 수반되지 않아 문제다. 박씨는 "오늘은 편한 날이라 그렇지, 평소에는 하루 '죽어라' 일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했다.  

    "평일 같은 때에 긴 코스를 돌게 되면 한 바퀴에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걸리는 경우도 많죠. 그러고 나면 제대로 좀 쉬어야 하는데, 사람들 수십 명 싣고 이런 사정 저런 사정 겪다 보면 늦어지기도 하니까 오래는 못 쉬어요. 그러면 담배나 한 대 태우고 바로 또 운행 나가고 그러는 거죠."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소한 일로 예민해지거나 스트레스 받는 경우도 예삿일이다. 박씨는 승객들에게 하차벨을 늦게 눌렀다고, 뒷문으로 승차했다고, 몇몇 이유들로 화를 낸 적이 있다고 했다. 박씨는 "돌이켜 보면 승객들에게 몹쓸 짓을 많이 했었다"라며 "정말 미안한 심정이 많이 든다"는 소회를 밝혔다. 

    "저녁 때가 되면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사소한 걸로도 예민해지고 그래요. 그런데 생각을 좀만 해보면 내 어머니도, 내 자녀들도 다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버스는 서민들의 발인데... 여기서 기사랑 승객이랑 서로 싸우고 그러는 거 보면 '꼭 이래야 하나' 싶더라고요. 뭐랄까... 참 안타까워요. 나부터가 후회스러워서 바뀌려고 노력 중인데, 하루종일 사람들 태우고 운전하고 그러다 보면 너무 힘들다 보니 새까맣게 잊을 때가 많더라고요."   

    박씨는 항상 운전대 옆에 무선마이크를 놓아둔다. 뒤에 탄 승객들에게 박씨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톤을 높이다 보니 화를 내는 것처럼 들릴까봐 걱정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를 사용하면 보다 톤을 좀 낮추고, 다정하게 말할 수 있어서 좋단다. 

    1일 2교대 실시? 근로기준법 개정? 다 좋지만...

    지난 7월 9일 경부고속도로 양재나들목 근처에서 사고를 내 18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버스기사는 전날에도 18시간을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에게도 이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해당 기사의 피치 못할 사정도 이해가 됐다. 며칠 연속으로 15~18시간 동안 운전한 경험을 박씨를 비롯한 다수 기사들이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버스기사들이 1일 2교대로 일하는 곳도 많지만, 저희처럼 격일제로 근무하는 곳도 많아요. 그런데 격일제로 하게 되면... 자, 보세요. 내가 오늘 출근을 해야 하는데 갑자기 뭐 누가 돌아가셨거나 해서 출근을 못하게 됐단 말이에요? 그러면 오늘 쉬는 사람 중에 누가 대신 나와야 할 거 아니에요? 버스를 쉬게 할 순 없잖아요? 그러면 대신 나온 그 사람은 3일을 하루 18시간씩 연속 일하는 거죠. 어제는 원래 일하는 날, 오늘은 나 대신, 내일은 그 사람 원래 일하는 날이니까."       

    전국의 버스기사들이 근무하는 형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루 9시간씩 2교대하는 체계가 있고, 하루 약 18시간씩 격일로 일하는 체계가 있다. 지난번 경부고속도로 양재나들목 쪽에서 사고를 낸 기사는 격일제 형태로 근무했으며, 앞서 박씨가 설명한 상황대로 연속으로 이틀 이상 18시간을 일한 경우다. 

    이에 따른 문제가 발생하자 최근 국회환경노동위원회는 여객운송업에 관한 근로기준법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기존까지 무제한 근로시간 허용대상이던 특례업종에서 '노선버스 여객운송업'을 제외시키는 방향이다. 이대로 법안이 개정된다면 박씨처럼 격일제로 근무하던 버스기사들은 실상 1일 2교대로 근무형태를 전환할 수밖에 없게 된다. 

    버스기사의 피로는 곧 시민의 안전과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변화는 기실 비정상의 정상화처럼 비친다. 허나 이를 앞둔 버스기사들의 속내는 조금 복잡하다. 박씨는 "1일 2교대로 변하는 건 당연히 좋지만, 기사 입장에서 우려되는 측면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단연 임금 문제다. 

    현재 박씨가 일하는 회사에서 정한 만근일은 한 달 24일. 그러나 1일 2교대로 근무형태가 변할 시에는 만근일이 월 22일로 결정될 전망이다. 이 경우 임금 삭감은 자연히 따를 수밖에 없는 우려다. 여기에다 격일제로 일하면서 쉬는 날 아르바이트 등으로 수입을 보태는 기사가 많다는 현실까지 고려하면 한숨은 더 깊어진다. 

    "우선 2교대 자체는 기본적으로 환영입니다. 하지만 걱정되는 점도 있어요. 우선 현재 사측과 지자체는 임금 삭감 없을 거라고 말은 하죠. 그런데 며칠 만근을 기준으로 말하는 건지, 교대 비용과 교대 방식은 어떻게 되는 건지가 불분명하거든요. 과연 기사들의 요구가 제대로 반영될지..."      

    박씨가 이처럼 근심을 호소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현재 이 지역의 많은 버스기사들이 임금체불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7월 18일에는 전주의 한 버스기사가 자신의 회사 앞에서 "체불임금을 지급하라"며 자해소동을 벌인 바 있다. 그에 앞서 지난 2월에는 3억 원 대의 임금을 체불한 어느 버스회사 대표가 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버스기사들의 임금 체불 문제는 지난해부터 강원과 부산, 울산, 창원 등지에서도 발생한 사안이다. 전북 지역에서 일하는 박씨만 하더라도 현재 두 달 치 임금을 못 받고 있다. 액수로만 500만 원 중반 대에 이른다. 박씨는 "이번 근로개정법 59조 개정 움직임이 버스기사들의 육체적 피로는 줄일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기사들의 근로조건과 관련한 보다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일부 버스회사가 기사 다수를 촉탁 계약직으로 고용하는 것도 문제다. 일례로 전북의 모 버스회사는 기사 전체의 40%를 촉탁 계약직으로 고용했다. 단연 임금을 아끼려는 조치다. 그런데 이 경우 운전 적성검사와 신체검사 등이 허술하다는 지적이 업계에 만연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지난 7월 24일 전남 화순에서 신호대기 도중 갑자기 숨져 사망한 버스기사도 촉탁 계약직 노동자였다. 

    취재 도중에 만난 김아무개씨가 이에 대해 말했다. 김씨는 박씨의 동료 기사다.

    "보너스 안 주고, 퇴직금 안 주고 그렇게 써먹으려는 거지."

    박씨가 동조하며 말했다. 

    "완전 공영제까지 나아가야 돼. 이런 식이면 촉탁직 아닌 우리라고 뭐 퇴직금 받는다는 보장이 있어? 지금도 못 받을 것 같은 사람이 수두룩한데..." 

    그럼에도... 버스기사는 이럴 때 '힘이 난다'

    밤 10시. 마지막 한 바퀴만 돌면 퇴근이다. 이른 아침에는 분명 쾌활했던 박씨였는데, 그새 기운이 사라져버린 듯했다. 운전석 의자에 기대 "어우~" 하며 쉬다가도 다시 일어난 그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실행시킨 후 셀카 모드를 작동시켰다.    

    미소 짓기 연습을 위해서였다. "버스운전 시작한 이후부터 표정이 화난 사람처럼 변했다"는 딸의 말을 듣고 시작했다고 한다.  

    "버스를 하기 전에는 분명 안 그랬는데, 정말 어느 순간 눈 주위가 심술로 가득하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계속 인상 찌푸리면서 일한 탓일 겁니다. 그래서 미소 짓는 걸 연습 중인데요, 아 어렵네요."   

    버스기사는 힘들다. 그럼에도 버스기사는 이럴 때 힘이 난단다. 단 한 가지다. 간단하다.  

    "승객들이 먼저 인사를 건네줄 때죠. 역시 친절이 최고예요. 기사도 승객들에게 먼저 인사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지쳐버릴 때, 먼저 인사를 건네주는 승객이 있다면 힘이 납니다. 물론 말로는 '수고 많으십니다' 해놓고 뒤에 가서 민폐 끼치는 승객들도 있지만요... 하지만 진심어린 인사는 기사에게 다 느껴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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