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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맨 출신인 그는 왜 '광대의 길'을 택했을까
    우리 이야기 2018. 9. 23. 16:00

    포근한 날씨에 징검다리 휴일을 맞이하면 나들이 계획을 세우는 가족·연인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 때문에 더 분주해지는 이들이 있다. 나들이 장소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거리 공연예술가들이다. 

    그들의 삶은 어떨까. 신나는 음악, 사람들의 웃음소리, 커다란 공연장과 늘 함께 지내는 그들. <그린포스트코리아>가 한 공연예술가의 무대 바깥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중구의 국립중앙의료원 대강당. 이곳 직원들이 마치 어린이가 된 듯, 다소 유치한 음악에 맞춰 신나게 놀고 있었다. 강당이 떠내려갈 만큼 이들을 웃음 짓게 만든 건 다름 아닌 비눗방울. 비눗방울에 손을 닿으려 폴짝폴짝 뛰는 모습들이 정말 아이 같았다.


    “선생님요! 쪼매 더 힘 좀 내보이소! 터졌잖아예!”

    유머가 배인 경상도 말씨가 들렸다. 낯선 모양의 도구들로 쉴 새 없이 비눗방울을 만들어대는 안동윤(40)씨였다. 비눗방울 공연가, 버블아티스트 등으로 불리는 안씨는 현재 전국 각지를 돌며 ‘2018 신나는 예술여행’ 공연을 펼치고 있다. 

    이날 공연시간은 약 1시간. 무대가 끝나자 몇몇 직원들이 사무실로 돌아가기 전 안씨에게 몰려왔다. 사진촬영과 싸인 등을 부탁하기 위해서다. 한 직원은 “이렇게 웃어보기는 정말 오랜만”이라며 “안동윤씨의 팬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이 같은 관객들 반응에 안씨는 장비를 챙기고 차에 돌아가면서까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고심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올해 공연부터 새로 실행한 아이디어들을 다시 떠올리고, 그것의 보완점 등을 살피는 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안씨처럼 전국을 돌며 공연을 펼치는 이들은 겨울이 방학과 비슷하다. 설 수 있는 무대가 별로 없기 때문인데, 그 시기 내내 다음 년도 공연에서 선보일 아이디어와 싸움을 벌인단다. 고로 축제가 한창인 5~6월은 새 아이디어의 성공여부를 판가름 하는 시험대와 다름이 없다고.

    멘트, 장비, 콘셉트 등에 대한 새로운 구성은 사소한 것까지도 전부 살펴야 한다. 만약 실패한 콘셉트을 들고 나온다면 다음 공연에 초청받지 못하고, 자칫하면 한순간에 백수 신세가 될 수도 있어서다. 다행히 안씨는 "올해 모든 면에서 성공적"이라고 설명했다. 

    안정적인 수입이 없는 만큼 매년, 매일, 매 공연이 생계를 좌우할 살얼음판처럼 느껴지지만 안씨는 이 일이 좋다. 직장 일에 비해 공연은 노력에 대한 보상이 비교적 확실한 편이기 때문이다. 

    안씨는 사실 삼성맨 출신이다. IMF에 나라가 휘청거리던 시기 그는 삼성SDI에서 각종 부품 등을 관리하는 정직원으로 근무했다. 그곳에 입사했을 때 부모님의 그토록 환했던 표정이 여전히 잊히질 않는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비눗방울 공연가로 활동중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사실 회사생활도 만족스럽게 했어요. 회사 상사들이 제게 ‘동윤이 너는 딱 이 회사 체질이다’라고 말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가 어느 날 체육대회에서 레크레이션 강사를 보게 됐어요. 보자마자 '저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진짜 꿈이 생겼달까요.”


    그의 회사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약 3년 정도 근무하다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택했다. 레크레이션 강사로 시작했다가, 일본 공연가 오꾸다 마사시의 비눗방울 무대를 본 후 ‘대한민국 제1호 비눗방울 공연가’를 꿈꿨다. 

    그렇게 걷게 된 공연예술가의 길은 험로였다. 안씨는 이 일을 시작하고 10년 동안 가난을 배웠다. 끼니를 때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공연무대 연구에 주로 매진하되 틈틈이 배달, 자판기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지냈다.

    “처음에 했던 다짐이 '10년만 해보자'였어요. 어떻게든 10년만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지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공연 일이 재미있었어요. 그게 버팀목이었죠. 재밌을 줄 알고 시작했는데 그렇지 않았으면 아마 진즉에 포기했을 거에요.”

    안씨는 이처럼 힘든 환경 속에서 공연예술을 하며 업계와 우리 사회의 한계점을 보았다고 했다. 그는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지방 출신이라는 점, 유학을 다녀오지 않았다는 부분에 여러 번 발목이 잡혔다.

    “실력이 쌓이면 공연비를 차츰 높여가는데, 제가 경상도 말씨를 구사하다보니 으레 선입견을 갖고 섭외를 안 하는 분들이 있어요. 심한 경우 ‘그 정도 돈이면 서울 공연가를 부르겠다’고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분들도 계시죠. 사실 한 두 명의 문제도 아니에요.”

    돈을 안 받고 그저 시민들과의 만남을 위해 무대에 나섰을 때도 사정은 비슷했다. 길이나 광장에서 버스킹 형태로 공연을 선보이려고 하면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는 저지를 당했다. 소음으로 인한 민원이 우려된다는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일부 지역들은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으로 마을을 조성하겠다고도 했었는데, 공연예술업계 내에서 부정적 여론이 많아 안씨도 그곳으로 가지 않았다. 많은 예술의 거리는 기성 예술가 혹은 상권개발을 목적으로 조성되는 경우가 많아 발전이 된 후에는 버티기 더 힘들어진다는 게 업계 내 여론이다.


    안씨는 3년 전 처음으로 자신의 집을 장만했다.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예쁜 아이도 낳았다. 평범한 삶이지만 여기에 이르기까지 십수년 세월이 걸렸다. 비눗방울 공연가로서 지상파 TV에도 출연하고, 커다란 무대도 많이 섰지만 한 단계씩 오를 때마다 더 숱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가끔은 포기도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단다.

    "집에 있는 휴지 상자만 봐도 '이걸로 비눗방울을 낼 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또 거기다가 '꽃을 위에 얹으면 더 이쁘겠다'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했죠. 일상이 온통 비눗방울 생각만 들다보니 '관둬도 할 게 없겠다' 싶더라고요."

    지금의 그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돌아오는 안씨의 대답은 소박했다.

    "광대로 불리고 싶어요. '행복을 배달하는 광대'라고요. 제가 배달해주는 행복을 관객들이 돌아가는 길까지 그대로 간직해서 돌아가길 바라죠. 그리고 환갑이 넘으면 비눗방울 아저씨가 아닌 비눗방울 할아버지로 불리고 싶고요. 그렇게 훗날이 되면 거리 공연예술 후배님들이 더 발전할 수 있는 선례를 남기고 싶어요."

    5~6월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행사가 벌어진다. 이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수많은 거리공연예술가들은 지난 수개월 동안 자신과의 싸움을 거듭했다. 5월이 그에 대한 시험무대였다면, 6월은 보완까지 마무리된 '진짜' 무대다.

    만약 축제 현장에서 공연예술가들을 보게 된다면, 당신을 미소짓게 하려고 그들이 흘린 땀과 열정을 같이 봐주면 어떨까.

    안씨는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부탁했다.

    "저와 선후배들 모두의 신나는 예술여행은 계속됩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시고 행복함을 많이 느끼시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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