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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환경법!] "개연성 커" vs "확실한 증거 없어" 이럴 땐?
    기사 모음 2018. 11. 24. 00:48

    ‘환경쿠즈네츠 곡선’이란 게 있다. ‘∩’자 모양으로 생긴 이 곡선은 국가가 일정 수준의 경제발전을 이루면 환경이 갈수록 깨끗해지는 현상을 보여준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더 나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달리 말하면 경제가 발전할수록 오염된 환경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커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경우 환경분쟁이 늘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환경분쟁을 어떻게 풀고 있을까. <그린포스트코리아>와 환경 전문 법무법인 '도시와사람'이 함께 들여다봤다. 이를 통해 환경법에는 어떤 내용이 있는지, 혹시 문제는 없는지, 또 알아두면 쓸 데 있는 내용은 무엇인지 등을 소개한다. 구성은 법원의 판례를 중심으로 이야기 형태로 각색했다.[편집자주]

    2003년 인천. 서해안 김포지구 간척지 일대 해역에는 어민들의 한숨만 두둥실 떠다녔다. 어민들은 언제부터인가 잡히는 물고기의 양이 크게 줄었다며 하소연했다.

    어민들은 어획량 감소 원인으로 한 가지를 의심했다. 인근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SL공사)가 매우 더러운 물(고농도 침출수)을 배출해 바다가 오염됐단 것. 이에 어민 200여명은 SL공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어민들

    SL공사가 조성한 쓰레기매립지가 문제에요. 서해안 김포지구 간척지에는 약 628만평 규모의 쓰레기매립지 4곳이 있어요. 수도권 3개 시·도, 57개 시·군·구에서 발생한 생활·사업장폐기물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 양이 무려 한해 720만여 톤에 달하죠. 그런데 매립 과정에서 고농도 침출수가 인근 하천인 시천천에 배출되고, 이 침출수가 바다로 흘러들어 온다고요.

    SL공사

    어민들 주장은 정황 아닌가요? 어획량 감소가 침출수 때문이란 ‘확실한’ 근거가 없잖아요. 특히 어민들은 허가된 어구량을 초과해 조업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저희로서는 폐기물관리법상 침출수 배출허용기준 등 관련 규제를 어긴 적도 없다고요. 어민들 주장대로 해양이 오염됐다면, 한강 어구로부터 유입되는 쓰레기를 의심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1심 재판부(2007년 10월)

    어민들이 허가 어구량을 초과해 조업했군요. 어민들이 소송을 제기하며 피해 규모를 확대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SL공사가 어민들이 요구한 만큼의 손해를 전부 배상할 의무는 없겠네요.

    그런데 SL공사 때문에 어획량이 줄어든 것은 타당해 보입니다. 만약 어획량 감소가 SL공사 때문이 아니라면, 이는 SL공사 측이 입증해야지요. 매립장이 배출한 침출수가 물고기를 죽일 만한 영향이 없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단 겁니다.

    하지만 SL공사는 이를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어민들 말대로 어획량 감소의 책임이 SL공사 측에 상당 부분 있다고 판단됩니다. 그러니, SL공사는 어민들이 말한 손해액의 50%인 105억7650여만원을 배상하세요. SL공사 책임을 50%로 제한한 건 어민들의 초과 조업에 따른 겁니다.

    2심 재판부(2009년 8월)

    어민들 주장에 개연성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어획량 감소가 침출수 때문이라고 단정 짓긴 어려워 보입니다. SL공사 말대로 한강 어구로부터 유입되는 쓰레기 등이 원인일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특히 SL공사는 규제가 정한 기준치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침출수를 배출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수도권매립지는 공공적 성격을 가진 시설이고, 실제로 SL공사는 인근 환경조성을 위해 여러 지원사업을 해왔습니다.

    이런 점에 비춰보면, 어민들이 설령 침출수로 피해를 봤다고 해도 이는 수인한도(참을 수 있는 정도) 범위 내에 있다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이번 법정은 1심과 달리 SL공사가 어민들에게 손해를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하겠습니다.

    대법원(2015년 3월)

    매립지의 침출수가 해양생물에 피해를 준 점. 이에 따라 어획량이 줄어든 점은 개연성이 커 보이네요. SL공사로서는 오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막상 오해를 풀 만한 증거는 내놓지 못하고 있고요.

    물론 매립지의 침출수 농도가 규제기준보다 낮긴 합니다. 또 한강 어구에서 유입된 쓰레기들이 원인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게 침출수의 무해함을 입증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므로 이번 법정도 1심과 같이 SL공사가 어민들에 손해를 배상할 것을 명령하겠습니다.

    다만, 1심 재판부보다 액수는 낮추겠습니다. SL공사가 어획량 감소에 모든 책임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어민들 역시 초과 조업 등을 한 게 사실이니까요. 이는 어업수익 손실액 등을 앞서 감정한 감정인의 평가를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손해배상액 53억6000만원으로 정합니다.

    이승태 변호사

    어민분들이 많이 힘드셨겠군요. 무려 12년간 소송을 진행하다니요. 승소 판결을 받아 다행이긴 하지만, 소송 전부터 수년 동안 입은 피해도 만만치 않았겠지요? 고생하셨습니다.

    SL공사의 주장은 이렇네요. “폐기물관리법 등 관련 법을 모두 준수했다. 그러므로 별도의 오염원을 제거하지 않았더라도 잘못이 없다. 또 어장의 수질오염은 한강하구로부터 유입되는 쓰레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대다수의 환경소송 사례에서 발견되는 모습입니다. 적잖은 가해자들이 “법령이 요구하는 오염 방지시설을 모두 설치했고, 관련 기준 등을 모두 준수했다”며 피해자들의 청구를 부인하거나 법원 판결에 불복하지요.

    그런데 이번 사례의 1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환경정책기본법’의 제7조와 제44조 등을 반영했네요. 이에 따르면 환경 훼손에 따른 손해 여부 등의 입증은 환경오염을 발생시키는 사업자 쪽 책임이거든요. 이는 민법 제750조에 대한 특별규정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법. 시민으로서 그저 좋기만 한 걸까요? 꼭 그렇진 않습니다. 위에서 거론되진 않았지만, 어민들 쪽은 침출수가 바다로 방류됐다는 점을 입증했었거든요. 이로써 매립지가 침출수를 ‘배출’했고, 그것이 바다로 ‘도달’했으며, 어획량이 ‘감소’한 사실들은 입증된 셈이죠.

    이렇게 모인 사실들은 어획량에 피해를 줬을 개연성을 갖췄죠? 관건은 침출수가 실제로 어획량에 영향을 줄 정도로 유해한지였는데, 1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이 침출수가 무해하다는 입증을 SL공사더러 하라고 한 것입니다. SL공사는 이를 입증하지 못한 것이고요.

    문제는 시민으로서는 이처럼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을 정도의 사실들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어민들이 침출수가 바다로 흘렀다는 점을 입증한 것만 보더라도, 역학조사 등 상당한 과학적 방법이 동원되고 드는 비용도 크기 때문이지요.

    결국 현재의 최선은 행정당국이 단속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시민은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시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잘 지켜봐야 하고요. 사업자들은 공법상의 기준을 준수해도 행정적 제재를 안 받을 뿐, 사법상 책임까지 면제되는 게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승태 변호사는 제40회 사법시험 합격(1998년), 현재 법무법인 '도시와사람' 대표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윤리이사(2015.2~2017.2), 국무총리실 자체평가위원회 위원(2014.11~현재), 한국환경법학회 정회원(2015.7~현재), 환경부 고문변호사(2018.4~현재)로 역임 또는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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