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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잡글] 비판받는 민주노총을 옹호함
    단상 2018. 12. 1. 21:06

    민주노총이 최근 경사노위 출범식에 불참한 것을 두고 비판이 쏟아진다. 친(親)노동 정부를 표방한 이번 정부마저 나름 따끔한 메시지를 던진 데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이 눈물을 흘렸다는 말이 퍼지면서 비판은 여론이 되어가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1일 사회·노동단체 연대의 중심에 서서 다시 빨간 머리띠를 둘렀다. 지난 집회와 같이 이번에도 문재인정부가 더 이상 촛불정부가 아님을 선언했다.

    민주노총의 이 같은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민주노총이 집단 이기심을 내세워 사회적 대타협을 가로막고 있단 것. 둘째, 민주노총이 누구 하나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싸움을 벌이고 있단 것.

    난 둘째 쪽이다. 민주노총은 다수가 끄덕일 법한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은 대다수로부터 외면당해가며 힘들게 싸우고 있다.

    정부·여당의 '답정너' 태도 

    민주노총의 강경투쟁 배경인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는 기실 잘못된 면이 적잖다. 이번 정부는 대선 당시 손학규의 "저녁이 있는 삶" 구호를 그대로 차용한 한편, "사람이 먼저"임을 내세우더니, 이제 와서 슬쩍 말을 바꾼다. 최저임금 산입범위와 탄력근로를 확대한단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서 자신들이 정부와 산업계의 들러리밖에 안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들러리’라는 표현이 조금 자극적인 탓인지, 꽤 많은 이들이 민주노총 주장에 ‘갸우뚱’ 하는 게 사실이다. 허나 민주노총의 주장은 일면 타당성이 있다.

    현재 정부와 국회, 산업계에 있어서 탄력근로 확대는 그 자체로 이미 결정된 사안이다. 6개월이냐 1년이냐의 선택지만 남겼다. 탄력근로 확대에 전면 반대하는 민주노총 입장에서 경사노위는 기울어진 운동장인 셈이다. 실제로 들러리만 설 수도 있는 구조란 것이다.

    그나마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안’의 경우 정부·여당이 힘을 보탤 것으로 보여 비빌 구석이 있다. 문제는 정부·여당이 이를 '거래카드'로 활용하려는 태도에 있다. "ILO 핵심협약 비준 원하면 경사노위 참여해라"는 식이다. 

    그러나 ILO 핵심협약 비준은 정부와 국회가 바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걸 탄력근로 확대와 1+1패키지로 묶는 건 가혹하다. "ILO핵심협약 줄테니, 탄력근로 확대 내놓아라"는 식이다. 답정너다.  

    민주노총은 본질적으로 탄력근로 확대에 ‘결사항전’해야만 하는 조직이다. 탄력근로 확대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앞당길 수 있어서다. 탄력근로 확대는 산재보상법에 허무함을 안긴다. 

    산재보상법을 따르면 3개월 이상 60시간 이상 일해선 안 된다. 하지만 지금 문제가 되는 탄력근로 확대의 경우 현재 여야의 어떤 안을 갖다 대도 3개월 이상 60시간 이상 근무할 소지가 생긴다. 합법적 산재가 가능해진다는 게다. 모순이다. tvN 고한빛PD를 벌써 잊었냐고 묻고 싶다.

    임금삭감도 우려된다. 탄력근로제 기간을 현행보다 확대할 시 임금삭감 케이스가 발생한다는 점은 이미 다수 언론을 통해 팩트로 확인됐다. 고용노동부가 이를 부인하는 설명 자료까지 냈다가 된서리 맞은 사례는 ‘그들 속이 참 새까맣다’는 의심만 불렀다.

    정부는 이러한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노동자의 임금저하를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말 그럴 참이라면 대책을 먼저 마련한 다음 탄력근로 확대를 재차 논의하는 게 옳다. 특히 이번 정부는 선행 과제를 건너 뛴 탓에 부작용을 낳은 선례가 있기에 더욱 그렇다.

    부대정책 없는 본정책 

    최저임금 대폭 인상. 선행 과제를 건너 뛴 탓에 여러 부작용을 낳은 사례다. 방향성은 옳았으나 방법론이 아쉬움을 남겼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시장충격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를 방지할 대책을 먼저 만든 다음 올리는 게 나았다.

    이를테면 임대차보호법 개정, 카드수수료 인하, 프랜차이즈의 본사-가맹점 간 불공정 계약 개선. 이를 위한 매스가 앞서야 했다. 물론 그러려면 수년이 소요되고, “더 이상 개혁을 늦춰선 안 된다”는 사회적 요구도 외면해야 했기에 어려운 면은 있었을 테다.

    하지만 전부 미룬 건 너무했다. 카드수수료 인하만 봐도 논의를 불태운 게 최근인데 곧 이뤄질 듯하다. 정부 의지에 따라 충분히 시기를 앞당길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이런 면에서 개혁정부를 자처하는 이번 청와대는 순간순간의 ‘개혁’ 타점을 살짝 벗어났었지 싶다.

    타점을 빗긴 개혁은 기어코 부작용을 불렀다. 최저임금 인상의 후폭풍이 일었다. 청와대는 처음에는 ‘과도기’라는 듯 일자리안정자금 등의 대안이 만회책이 될 거라고 했다. 현실은 달랐다. 청와대는 결국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했다. 애초의 임금인상 취지가 사라졌다. 부대정책이 없었던 탓이다. 

    민주노총 비판 신중해야

    글을 막 쓰다 보니 얘기가 (그리 멀고 높은 산까지는 아니고)뒷동산으로 갔다. 다시 민주노총, 경사노위 및 탄력근로제 얘기를 하자면 그렇다.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방침이 정해진 현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불참를 두고 비판만 제기할 순 없다.

    최저임금 인상 후 산입범위가 확대됐듯,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후 탄력근로제 확대는 조삼모사식 조치다. 정권 잡아보니 노동계 입장만 대변할 순 없더라고 말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최저임금이야 이미 지난 일로 후려쳐도 현재진행형인 탄력근로 확대는 그게 아니다.

    민주노총 비판자들은 해외 선진국 얘기들 많이 한다. 그런데 탄력근로 1년씩 하는 나라라 할지언정 기본적인 노동시간이 우리보다 훨씬 짧은 국가들이다. 잘못된 전제를 대며 비교하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 입장에 사람이 먼저라며 친(親)노동을 표방한 정부가 힘을 실어주고 있으니 노동계로선 실망할 법하다.

    이런 이유로 민주노총의 현재 모습을 집단 이기심보단 외로운 싸움으로 바라본다. 더 얘기하고 싶지만, 너무 길어질 듯해 줄이겠다. 다만, 한 줄 첨언하자면 탄력근로 확대하면 무노조 사업장 노동자들은 더 힘들어지리라 생각한다. 참고로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0%대다.

    어쩌다 보니 민주노총 열혈 지지자처럼 썼지만 꼭 그렇진 않다. 내친 김에 나중엔 민주노총에 대한 아쉬움 내지 비판도 써봐야겠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내년엔 경사노위에 참여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시시한 결론이지만 “잘풀리길”.(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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