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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경영권 박탈은 일대의 ‘사건’이었다. 조 회장이 스튜어드십 코드로 직을 잃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일찍이 거론된 바지만, 막상 현실화하자 국민연금의 영향력을 두고 갖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 총수를 주주의 손으로 끌어내린 사례는 ‘재벌개혁’ 일환으로서 유의미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그러면서 다른 재벌기업에도 적용하려면 관련 법 개정이 꼭 이뤄져야 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물론 일각에선 ‘연금사회주의’로 꼬집기도 한다.

조 회장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로 자리에서 물러난 ‘1호’ 주인공이 됐다. 전체 의결권(9484만 4611주) 가운데 7004만 946주, 73.84%가 참여한 대한항공 주총에서 35.9%가 조 회장 연임에 반대했다.

조 회장 연임 실패의 결정적 계기는 대한항공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반대였다. 국민연금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탁위)는 주총 전날 조 회장 연임에 반대 뜻을 밝혔다. 사회적 물의를 빚은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은 기업가치 훼손에 따른 주주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이에 따라 실제로 조 회장이 물러나자 “비로소 마땅한 결과가 나왔다”는 반응들이 적지 않게 나왔다. 이른바 ‘갑질경영’과 횡령 및 배임을 저지른 재벌 총수 때문에 주주권 침해가 우려된다면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는 당연한 일이란 이유에서다.

당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최대의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자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해야 한다는 여론은 원래 높았다”며 “이번 결과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에 입각한 정당한 주주권 행사의 결과”고 평가했다.

하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지더라도 기업마다 사정이 다른 까닭에 다른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한항공 주총과 같은 날 열린 SK㈜ 주총에서 최태원 회장은 국민연금 반대에도 사내이사에 재선임 됐다.

갖은 비위행위로 인한 주주권 침해가 똑같이 우려돼도 각 기업의 정관에 따라 결론은 다르게 노출되는 셈이다. 이번 사례를 보면 대한항공 정관은 3분의 2 이상, SK㈜ 정관은 2분의 1 이상 동의를 얻어야 사내이사 재선임이 가능하다.

따라서 애초부터 기업의 탈선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방안이 상법 개정안과 공정거래법 개정안이다. 이는 현재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의 반대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은 기업 총수의 경영활동을 합법적으로 견제하도록 한 다중대표소송제, 감사위원분리선출제 등을 도입하는 게 골자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사익편취 규제기준 강화, 지주회사 요건 강화 등 이번 정부가 내세운 재벌개혁 규제 내용을 다수 담고 있다.

물론 사실상 정부 기관과 다를 바 없는 국민연금이 민간기업 총수의 명운을 가르는 데 대한 반감도 곳곳에서 나타난다. 기업이 정부의 과도한 영향력에 놓인다면 자율성 위축에 따른 생산성 및 효율성 악화를 낳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목소리는 보수 야당과 재계 등에서 주로 나온다. 이들은 조 회장 퇴진 사례가 ‘연금사회주의’의 신호탄이라고 주장한다. 대한항공 주총 직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과 경영자총협회, 자유한국당은 국민연금의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경련은 입장문을 통해 "국민연금이 민간기업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하게 된다는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크다"며 "(국민연금의)이번 결정은 사법부의 판결이 있기 전까지 무죄로 추정해야 한다는 원칙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총은 "국민연금이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을 반대한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정치적인 결정"이라며 "국민 노후자금의 수익성과 안정성 확보라는 본질적 역할을 가진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권을 흔드는 일을 벌여선 안 된다"고 전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국민연금은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정권 연금, 연금 사회주의라는 우려가 각계에서 쏟아지고 있다”면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5% 이내로 제한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을 서두르겠다”고 밝혔다.

나 원내대표가 예고한 법안은 정부의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과 정반대의 취지를 담고 있어 상당한 갈등이 예상된다. 조 회장 퇴진을 바라본 전경련 등 재계 단체가 얼마나 목소리를 키울 것인지도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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