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돈 빼앗기고, 두들겨 맞고... 대학병원은 감옥이었다"
    기사 모음 2017. 7. 14. 00:29

    [제보 취재] 전북 A대병원 전공의 폭행사건 '진실공방'... 피해자, 고소장 접수 - 병원 "맞고소할 것"


    "야, (네 돈) 만 원만 좀 갖고 와." 

    벌써 몇 번째. 선배는 온갖 이유를 들며 돈을 요구했다. 무슨 이유인지 꼭 현금만 원했다. 물론 돈을 줘서 편해질 수만 있다면 만 원 정도는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일이 몇 차례 반복되니 당연히 무리가 따랐다. 

    금품을 요구하는 이들은 여럿이었다. 선배들의 주말 식사비용 50만~100만 원가량을 준비해놓으라는 지시가 비주기적으로 내려졌다. 그렇게 통장에서 빠져나간 돈이 수백만 원. 1년 동안 대략 600만 원이었다. 

    선생님한테 고발하는 건 꿈도 꾸지 못했다. 그에게 두들겨 맞았을 때의 악몽이 더 끔찍했기 때문이다. 뺨을 맞은 것도 모자라 앞차기와 로우킥(아래 차기) 등 발차기 공격을 당한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돌이켜 보면 그는 유독 "후배들은 좀 맞아야 된다"는 말을 즐겨했다. 

    "지속적인 금품갈취·폭행... '웃지마 XXX야' 폭언 들었다"



    일탈 청소년들의 얘기가 아니다. 의사들 이야기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목숨을 살리는 그 의사들 말이다. 그런데 전북에 있는 'A대학교 병원 정형외과 의국'에서 전공의로 일했던 박영수(가명)씨는 몇몇 의사들 때문에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다고 한다. 그는 어떤 일을 겪은 걸까. 

    "끔찍했어요. 그곳은 완전한 감옥이었어요."

    지난 11일 기자와 마주한 영수씨는 인터뷰 내내 눈물을 쏟아냈다. 그는 A대병원 정형외과 전공의로 근무한 2년 동안 폭언과 폭행, 금품 갈취 등의 인격 침해를 겪었다고 주장했다. 가해자는 전공의 동료와 선배, 펠로우(전문의) 일부라고 했다. 

    그가 이 같은 피해를 입기 시작한 건 지난해 11월, 선배 A씨를 취프(사수)로 만나면서부터다. 영수씨는 당시 전공의 1년 차에 불과했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전공의 3년 차였던 A선배는 그런 영수씨를 괴롭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방법은 금품갈취와 폭언·폭행이었다. A선배는 애인과 써야 한다면서, 회식 때 쓰겠다면서 갖가지 이유로 영수씨에 돈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내가 화가 나는 일이 생길 때 돈을 달라고 할 테니 (너는) 항상 현금을 갖고 다니라"고도 주문했다. 1만 원에서 7만 원씩, 때에 따라 요구하는 액수는 달랐다. 영수씨는 지금까지 50만 원 이상을 줬다고 밝혔다. 

    하루는 이 선배 때문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구타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수씨는 A씨에 업무가 미숙하다는 이유로 몸 곳곳을 두들겨 맞았다. 자연히 폭언도 뒤따랐다. 영수씨는 이를 녹음했다. 기자에게 공개한 녹음파일에서 선배 A씨는 쉴 새 없이 욕설을 뱉었다. 

    "야, 이 XXX야. 웃지마 이 XXX야. 여기서 네 말 믿는 사람 아무도 없어. 의사인 것처럼 하지 말란 말이야."         

    A선배는 영수씨보다 4살 어리다.

    "교수까지 폭행 가담... 집합·내리갈굼 등 악습도"



    이 같은 가혹행위를 근절하는 데 앞장서야 할 교수는 되레 이를 종용했다. 영수씨의 주장에 따르면 정형외과 의국 펠로우(교수급 전문의)인 B교수는 술자리에서 "후배들은 좀 맞아야 한다"라는 말을 즐겨했다. 


    영수씨는 그런 그에게 직접 구타 당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20일, 오전에 회진을 마치고 B교수로부터 뺨과 배, 다리를 두들겨 맞았다. 간호사 스테이션 앞에서 열 대 정도를 맞은 뒤 아예 간호사실로 끌려가 수십 대 폭행 당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영수씨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쉬는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영수씨에게는 주말·공휴일에도 휴가가 주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흘러 명절이 돼서야 단 하루 쉴 수 있었고, 그때 가까스로 진료를 받았다. 그동안은 진통제를 먹으면서 버텼다. 

    "이마저도 큰 용기가 필요했어요. 지역 어느 병원에 가도 A대병원 관계자의 지인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혹여나 이쪽 업계(의료계)에서 입소문이 나면 불이익을 받을까봐…."  
       
    영수씨는 자신의 고통이 몇몇 선배 때문만은 아니라고 했다. 집단 악습도 문제라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 회식 강요 ▲ 의국비 명목의 금품요구 ▲ 선배들 주말 식사비 마련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회식의 경우 단체 얼차려와 선후배들 간의 내리갈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았다. 영수씨가 속해 있는 의국은 매주 금요일 전공의 1년 차부터 펠로우까지 참석하는 회식이 열린다. 이때 몇몇은 사전 업무로 인해 지각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것이 단체 얼차려의 빌미가 되곤 했다. 

    "회식 끝나고 밤 11시쯤이 되면 8층 회의실에 집합이 걸려요. 이때 4년 차가 3년 차를 혼내고, 3년 차는 2년 차를, 2년 차는 1년 차를 혼내는 식의 내리갈굼이 이어지죠. 엎드려뻗쳐 등의 방식으로 (얼차려가) 이뤄지는데, 한 명을 콕 찍은 후에 그 동기들더러 '너희는 얘네 때문에 혼나는 거야'라고 압박을 가하기도 해요."   

    의국비와 관련해 영수씨는 "전공의 입사 때 200만 원을 내야 했다"라고 주장했다. 의국비는 전공의들이 병원에서 몇 달 동안 생활하는 데에 필요한 돈을 의미한다. 이는 한때 대학병원 곳곳에 만연해 있던 악습으로 지적돼왔으나 현재는 사라지는 추세다. 

    선배들의 주말 식사비 마련도 문제다. 영수씨는 "1년 차 전공의들은 선배들의 주말 식사비용으로 1인당 50만 원에서 100만 원가량을 모아야 한다"라고 밝혔다. 영수씨가 주말 식사비 명목으로 내놓은 돈은 600만 원 정도라고 했다. 

    영수씨는 지난 2월까지 A대병원에서 일하고 현재 그만둔 상태다. 그러면서 그는 "더 이상 나와 같은 피해자가 안 나오길 바란다"라고 인터뷰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한때 가혹행위 피해자였던 이들이 어느 순간 가해자로 변해있어요. 이런 악습의 고리가 완전히 끊기길 바랍니다. 더 이상 저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제까지의 가해자들은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해요."   

    A대병원 "대부분 거짓... 무고·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예정"  



    A대병원 측은 영수씨의 주장이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기자는 가해자로 지목된 의사들을 취재하기 위해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은 끝내 닿지 않았다. 수술실 일정 때문에 바쁘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코메디닷컴>과 <청년의사> 등 의료전문매체에 따르면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폭력을 행사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라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의사들 대신 인터뷰에 응한 A대병원 홍보실 관계자는 1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꿀밤 정도 때린 적은 있다'라는 언론 보도가 있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A대병원도 인정하는 부조리는 있었다. 이 병원 홍보실 관계자는 "선배들의 주말식사비 명목으로 후배들이 돈을 모은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는 "식사비 모금은 정형외과 특유의 관행이었으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나섰다"라고 설명했다. 

    문제의 의국비에 대해서 홍보실 관계자는 "의국비 같은 건 없다, 전공의는 동문회비 100만 원을 낸다"라면서 "(의국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라고 반박했다. 그외에 선배가 후배 의사에 개인적으로 돈을 요구한 것에 대해서는 "병원협회 등 관련기관 조사 결과가 사실 여부를 가릴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5일 진상조사에 나선 보건복지부와 대한병원협회는 다음 주 중에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영수씨와 A대병원은 법정공방을 앞두고 있는 상태다. 영수씨는 지난 10일 전주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A대병원 측은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명예훼손·무고 혐의로 (영수씨를) 맞고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