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의사들도 '미투' 가능할까? "생업 포기해야 할 수도"
    기사 모음 2018. 3. 17. 16:23

    (사진=픽사베이)


    “아침 회진 전에 갖는 컨퍼런스 때 교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적이 있어요. 교수가 재떨이를 집어던졌죠. 간신히 피했지만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네요.”(지방 모 대학병원 전공의 A씨)

    지난 달 15일 서울아산병원의 한 간호사가 투신해 숨진 원인이 간호업계 특유의 악습 때문이란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의사 역시 못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아울러 사회 곳곳에서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가 한창이지만 의사들은 피해사실이 있어도 동참하기 힘들다고 한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의사들은 “미투자체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만 이 업계는 또 다르다”고 말한다. 그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 언어폭력 다반사에 폭행·성희롱까지…가세 안 하면 '왕따'


    모 대학병원 정형외과 4년차 전공의 황모(30대)씨는 자신이 집단 내 왕따라고 고백했다. 1년차 때부터 폭언과 폭행에 시달려온 그가 후배들에게는 그렇게 안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윗선에서는 철저한 군기문화에 모두가 편승해야 후배들도 이를 당연시 여겨 받아들인다고 인식한다”며 “여기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조직질서에 반하는 인물로 낙인찍힌다”고 설명했다.

    이런 일은 흔한 편이다. 최근까지 대학병원 의사로 일한 박모(30대)씨는 “원산폭격(바닥에 머리를 박는 얼차려 행위)을 워낙 많이해 탈모가 온 동기도 있다”며 “의사들 세계에서 언어폭력은 일상 다반사고 물리적인 폭력도 횡행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폐해는 일부의 사례가 아니다. 실제로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2017년 전공의 수련 및 근무환경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공의 71.2%가 언어 폭력을 경험했다. 신체 폭력을 경험한 전공의도 20.3%에 달했다. 

    이 조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또 있다. 여성 전공의의 성희롱 피해다. 절반에 가까운 48.5%가 이 같은 피해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구체적으로 성희롱 가해자로 ‘교수나 선배’를 꼽은 비율은 23.3%, 환자 31.7%, 기타 7.8%였다. 

    성희롱 가해자중 환자 비율이 가장 높다. 그러나 여성 전공의로서는 잠깐 지내는 환자보다 늘 함께 지내는 교수나 선배로부터 입는 피해가 더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또한 환자의 성희롱 중 일부는 교수와 상급자의 그것과 무관치만은 않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대학병원 전공의 이모씨는 자신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환자들이 보는 앞에서 교수나 선배가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그 순간 환자들은 ‘저 의사가 나에 대한 결정권이 없는 약자구나’라고 알게 된다”고 했다. 이어 “그때부터 환자들의 태도가 변하곤 한다”라고 설명했다. 


    ◇ 대책 강구했지만…실효성 없어 “피해자 보호 확실히 돼야”


    전공의들의 인권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매 맞는 전공의’ 문제가 공론화된 사례가 많다. 전북대병원에서는 2년차 정형외과 전공의가 선배와 교수로부터 폭행을 당해 하체에 피멍이 드는가 하면, 부산대병원에서는 한 교수가 전공의 11명을 상습적으로 폭행해 일부 전공의의 고막이 파열되는 일도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하에 수련환경평가위원회를 두었지만 유명무실하다. 수련환경위에서 가할 수 있는 가장 큰 처벌은 전공의 정원 감축인데, 이것이 폭력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그나마 지난 달 12일 발의된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개정안’은 기대할만 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개정안은 ‘전공의 인권을 침해한 지도전문의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자격을 취소 혹은 정지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한 게 골자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인 의원은 “수련병원 등에서 발생하는 전공의 인권침해를 막고 환자의 생명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길 바란다”며 “전공의 폭행과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안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은 일단 반기는 모습이다. 그동안 갖은 악습이 지속된 데에는 가해자 처벌이 미비했던 게 큰 원인으로 작용했었기 때문이다. 다만 피해자 보호에 대한 부분이 명확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박씨는 “문제제기를 하면 피해자가 더 피해를 보는 게 현실”이라며 “교수의 심기를 건드리면 환자를 안 준다던지, 수술을 안 가르쳐줘 자격시험에서 탈락하는 일이 실제로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피해자가 보복을 당해 커다란 불이익을 입는 경우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황씨도 “의사는 공무원이 아니기에 해직이 돼도 어디서든 다시 일할 수 있다”며 “업계가 좁아 다시 만날까도 두렵지만 가해자로 하여금 평판을 망친 피해자가 일을 하기 어려운 게 진짜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전문의가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11년(학부 6년, 인턴 1년, 수련의 4년)”이라며 “연차가 올라갈수록 매몰비용으로 인해 고발이 더 힘든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어 “폭로 때문에 가해자나 병원이 보복한다면 생업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며 “이 지점이 주요 포인트”라는 견해를 밝혔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