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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시어 : 커피
    단상 2019. 7. 14. 12:02

    <프레시안> 공채 당시 낸 작문인데, 여지껏 있길래… 

    제시어 : 커피(3,000자 내외)
      
     

    바보들의 행진이 따로 없었다. 작년 여름, 내가 봉사하던 단체 사람들 간에 난데없이 벌어진 토론 얘기다. 발단은 내가 매일 같이 커피를 마시는 습관 때문이었다. “커피를 매일 마시면 몸에 안 좋으니 조심하라”는 이들과 “매일 2잔 정도의 커피는 오히려 몸에 좋으니 괜찮다”는 이들이 토론을 벌였다. 이 나름의 각축전이 바보같이 보인 대목은 다름이 아니었다. 저마다 내세우는 근거는 똑같은데, 이를 두고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다 보니 “끝도 없는 싸움이 계속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커피가 몸에 좋다는 이들도, 여기에 반론을 펼치는 사람들도 전부 “내가 뉴스에서 봤다”는 근거를 들었던 것. 전문가가 단 한 명도 없으니 당최 무엇이 사실인지 증명할 도리는 없을 터였다. 고로 믿을 건 뉴스뿐인데 다들 저들 주장이 뉴스에 분명히 나왔단다. 피차 제대로 말이 통할 리 없었다. 끊임없이 “나도 뉴스를 통해 확인한 바, 당신은 틀리고 나는 옳다”는 식의 논쟁만 지속됐다.

    당황스러웠다. 이전까지 내가 갖춘 지식은 뉴스, 즉 언론은 사회통합 기능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뭐람. 고작 커피와 관련한 뉴스 하나로 평화롭던 봉사 공동체가 둘로 쪼개지다니. 이제와 돌아보면 내가 너무 이상적이었나 싶다. 최근에 라디오 프로그램 <정관용 시사자키>를 활자로 읽었는데, 여기에 출연한 손석희도 “언론의 사회통합 기능이 뭐냐”는 사회자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더라. 손석희는 “글쎄요”라고 운을 떼더니 “아마 언론이 사회통합 기능을 여태껏 못해 왔기 때문에 일종의 목표로 그것이 제시된 셈 아니겠는가”라고 답했다. 손석희도 이러할 진데 나는 대체, 왜, 무슨 근거로 ‘언론이 사회통합의 기능을 한다’고 믿었던 걸까. 나도 참 바보 같다.

    그러고 보면 이런 현상은 흔했다. 멀쩡히 잘 지내던 사람들이 언론과 뉴스를 들먹이며 길고 짧게 갈라서는 경우를 숱하게 봤다. 재작년에 내가 알바를 했던 곳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 당시 사장님은 “청년들의 미래가 걱정된다”면서 “기업들이 사내유보금 1%만 풀어도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알바생은 “그거 기업 입장에서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맞섰다. 이들 모두 자신들의 주장이 “뉴스에 나온 것”이라면서 저들 말이 옳다고 다툼을 해댔다. 어디 이뿐이겠나. TV에서도 정치평론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똑같은 짓하는 장면을 많이 목격했다. 누구는 “김대중 노무현이가 북한에 퍼주기 하고, 개성공단 만드는 바람에 김정일이 핵을 만들었다”고 소리치고, 그밖에 다른 이들은 “그건 사실이 아니”라며 맞선다. 이들 중 상당수가 자신들의 주장은 언론을 통해 나온 것이기에 분명한 사실이라고 피력한다. 그래서 저들 말이 옳은 말, 당신 말은 틀린 말이란다.

    이런 현실을 일찌감치 파악한 사람들은 그래서 조중동과 한경오를 같이 읽으라고 조언한다. 그래야 균형 잡힌 시각을 견지할 수 있다나 뭐라나. 하지만 어찌하나. 사내유보금이 풀 수 있는 돈인지 아닌지, 북핵이 정말 우리 돈으로 만들어진 건지 아닌지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관계 문제인데. 진보언론이라고 해서 풀 수 없는 사내유보금을 풀라 해선 안 되고, 보수언론이라고 해서 풀 수 있는 돈을 못 푼다고 거짓말하면 안 되지 않나. 물론 이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분야에 대한 사실관계 파악은 언론보다 전문가가 먼저 나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나온다. 하지만 그렇다한들 언론의 이런 모습이 정당화될 순 없다. 언론이 적극적으로 사실관계를 밝힘으로써 소모적인 논쟁을 줄일 수 있다면, 그렇게 시민과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언론이 먼저 나서는 것 역시 옳다. 그런데 우리 언론들은 의지가 없는 건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이 같은 시도를 안 하려는 듯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사회 곳곳에 언론보도를 근거삼아 사실관계를 다투는 사람이 많을 리가.

    그래서일까. 역설적이게도 가끔은 뉴스를 읽으면 읽을수록 되레 바보가 되어가는 것만 같다. 진실은 고사하고 내가 접한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가 없다. 각 언론들이 “이것이 팩트다”라고 말하는 것조차 매체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양극에 있는 주장들 중에서 내가 선택한 한 가지가 혹여 거짓은 아닐까, 그럴싸한 논리로 포장한 언어놀음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 때문에 뉴스를 통해 얻은 정보라 할지라도 어디 가서 말하기가 망설여진다. 상대방도 관련 정보를 다룬 뉴스를 본 사람이라면, 그런데 나와 정반대 논조의 뉴스를 보았다면 나름의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워 태클을 걸까봐. 그럼으로써 그와 내가 무엇이 사실인지도 모른 채 다툼질을 해댈까봐. ‘가짜뉴스’란 것이 다른 게 아닌데, ‘가짜뉴스’가 따로 있다고 말하는 것도 괜히 새삼스럽다. 대체 뭐가 진짜뉴스고 가짜뉴스란 말인지 참.

    작년 여름, 봉사단체에서 커피가 몸에 좋으냐 나쁘냐를 두고 펼쳐졌던 이들의 논쟁은 다행히 일찍 마무리 됐다. 봉사자들 각자에게 돌연 업무가 주어진 덕분이었다. 당시 봉사자들이 지금 어디서 어찌 지내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문득 궁금하다.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에, 그들이 지금 이 순간 어디에선가 또 커피를 두고 격렬한 토론을 벌인다면 어떻게 말할까. 내 상상력으론 세 가지 모습이 떠오른다. 첫째, 여전히 “뉴스에서 보았다”면서 커피가 몸에 좋다 안 좋다를 강하게 주장할 것. 둘째, 예전에도 봉사단체에서 이런 논쟁을 해본 결과 “언론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설파할 것. 셋째, 언론이 믿을 것이 못 되니 내가 직접 그 바닥에 들어가서 확인하겠다고 선언할 것. 만약 나라면 셋째를 택하겠다.(281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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